새로운 종류의 행복

by 비유리

집에 콕 박혀 바로 앞 편의점도 마음대로 다녀올 수 없는 나의 요즘 일상 루틴에 대해 기록해 본다. 신생아를 탈출하고 점점 수유텀이 길어지면 이 생활도 끝이기에. 벌써 실전 육아에 돌입한 시작 지점(생후 14일)보다 수유텀이 한 시간정도 늘어나서(현재 생후 33일) 조금 수월해진 느낌이다.


아이가 빠져나감과 함께 호르몬 변화가 급격히 이뤄져 우울감이 온다고 한다. 나에게도 기분이 오락가락, 며칠 우울한 날이 있었다. 이렇게 아프다니,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린게 아닐까 겁이나 우울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내 몸은 임신 중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출산 후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까지는 관절을 부드럽게 하는 릴렉신 호르몬이 여전히 작용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 손을 구부리는게 힘들다. 병원 가면 체외충격파 치료를 권한다는데 전에 눈길에 교통사고 나서 무릎에 한 번 받아봤는데 괴성 질렀다. 정말 아프다. 그래서 일단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외출을 못한지 한참이다. 지하주차장 황금 자리에 거의 두 달 가량 주차되어있는 내 차의 배터리가 방전이 되진 않을까 걱정되는 지경이다. 집 안에서만 살아가야하는 일상에 활력과 생기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정한 규칙들이 있다. 1. 읽기, 2. 쓰기, 3. 움직이기, 4. 먹기. 이 네가지를 빼먹지 않고 매일 하리라 결심했다. 규칙을 정하기 전에는 하루 하루가 미친듯이 느리게 지나가더니만 이제는 제법 눈 깜짝할 새 하루가 지나간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아주 운이 좋게도 나는 매일 9시간-10시간가량 잔다. 유튜브 브이로그들을 보니 임신 전과 다를 것 없이 숙면을 취하는 신생아 엄마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던데, 나는 정말이지 억세게 운이 좋다고 매일 저녁 잠에 들기 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마다 생각한다. 이름만으로도 고마운 우리 남편이 내가 자는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밤 9시쯤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새벽 수유 및 기저귀 갈기를 모두 전담한다. 내가 깰까봐 변기 물도 안내린다.(대신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내린다..;) 참으로 눈물나는 희생이다. 그 희생 덕에 나는 매일 아침 7시에 개운하게 기상하여 오전 11시 혹은 11시 반까지 아기를 본다. 남편은 그 시간에 잔다.


오전 시간에 나는 루틴을 하나씩 해치우고 시끄럽지 않게 유의하며 집안일을 한다. 먼저 아이를 거실로 옮긴 뒤 씻고, 침대 정리를 한 뒤 동이 트면 거실 식탁에서 책을 읽는다. 아기가 깰까봐 불을 안켜기 때문에 동이 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매일 같은 일상이라 쓸 말이 없을 것 같지만 집 안에만 있는 답답함을 종이 위에서 해소해야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세장씩 쓸 말이 생긴다. 읽거나 쓰다 말고 아기가 찡얼거리면 아기 침대 방문을 반복한다. 지속적 소음과 얕은 집중력 때문에 깊이 있는 독서나 작문 시간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찌저찌 짬을 내서 이렇게 루틴을 실천하고 나면 어쩐지 뿌듯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가 생긴다.


이쯤 하면 아기가 깬다. 그러면 잠깐 달랬다가 먼저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킨다. 잘 게우는 아이라 30분은 안고 있어야 한다. 내 옷에 토를 하면 옷도 한 번 갈아입는다. 그러고 나면 아기를 눕히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아기가 없는 방들의 창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밀대로 안방부터 거실, 소파 아래, 식탁과 부엌, 아기방, 자고 있는 남편 방을 제외하고 모든 곳의 바닥을 닦고 먼지를 턴다. 어젯 밤 설거지를 해놓은 그릇을 정리하거나 점심에 먹을 것을 준비한다. 그리고 수유를 한번 더 하고 나면 남편이 깬다. 그 뒤부터는 기저귀 갈기, 수유하기, 트림시키기, 울면 달래기같은 일을 같이 수행하고 틈틈이 빨래 개기, 설거지하기, 아기 목욕시키기 같은 일이 뒤따른다. 저녁 7시 정도에 수유를 하고 재운 뒤 방으로 넣어 놓고 홈캠 하면을 손에 쥐고 ‘자라면 바로 자주는 우리 아들 정말 효자네, 효자야’라고 감탄하며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본다.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한다. 하루 종일 애만 봤더랬지만 이 시간이 되면 텅 빈 거실이 왠지 허전하고 아기가 보고싶기까지 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하루가 뚝딱, 또 하루가 뚝딱이다.


낳고 바로는 모르겠더니 아기랑 밀착 24시간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정이 드는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동도 트지 않은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아기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밤새 이 아이가 보고싶었음을 깨닫는다. 정말 너를 내가 낳았다니, 믿어지지 않는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절대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종류의 행복이다.



아기 재우고 먹는 저녁. 드디어 마음 편히 회도 먹어본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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