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죽고 누구는 늙고 누구는 살 찐다

by 비유리

엄마가 죽고 몇 달이 지난 뒤에 나는 지금까지 엄마와 다녔던 여행들을 국가별로 정리해 하나의 유에스비에 담아 정리해 두었다. 방학마다 여행을 다녀오며 사진이 많이 쌓여 늘 정리를 해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겠다는 직감에 눈물을 머금고 사진 정리를 했었다. 정리를 하면서도 내가 언제 이 사진들을 다시 꺼내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다. 그치만 6년간 살아오면서 언젠가 그 유에스비를 열어 사진들이 잘 있는지 꼭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잊은 적은 없었다. 뭔가 부실해보이는 유에스비 탓에 혹시나 나중이 되어 이 파일들을 열었을 때 사진들이 안뜨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걱정과 함께 사진들의 존재를 매일 떠올리느라 6년 내내 그 사진들을 본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바람이 불어 문득 어제 그 유에스비가 생각이 났고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열어보았다. 내가 한 것이지만 어찌나 꼼꼼하게 시기별로 정리를 잘도 해놓았는지 감탄했다. 사진이 너무 많아서 로딩이 느리긴 했지만 손상이나 고장은 없었고 나는 파일별로 잘 들어있는 사진과 함께 엄마 얼굴을 감상했다. 6년 전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웃으며 사진들을 감상했고 사진 속 순간들이 너무도 생생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매일 사진들을 떠올린 탓에 생경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쨌든 잘 된 일이었다. 6년 전, 사진을 정리하며 눈물깨나 쏟았을 그 떄의 나를 떠올리니 어딘가 타인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의 산소에 잔디보다 흙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갓 뒤집어 엎은 흙들이 빨간 빛을 내며 방금 캔 고구마처럼 촉촉했는데. 이제는 한 계절만 지나도 잡초가 내 허리까지 오고 흙은 퍼석퍼석하게 말라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옛날 같다가도 그 산소에 가서 눈물 펑펑 쏟은 것이 겨우 반 년 전의 일이라는 것 또한 우습다.


우리 아파트엔 아이들이 많이 살아서 문을 열어 놓으면 바깥에서 아이들 소리가 자주 들린다. 특히 아침 8시쯤, 등원을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뭔지 악을 쓰며 고래고래 우는 남자 아이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아이의 엄마는 지친 얼굴로 가차없이 앞장을 선다. 그 지지고 볶는 모습이 언젠가 나에게도 펼쳐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든다. 엄마와 함께 했던 25년의 시간이 길다면 긴 세월이겠지만 지나고 보니 순식간이었다. 나의 아이와 보낼 시간들 또한 그럴 것을 알기에 급기야 아직 오지 않은 순간까지 그리워하기에 이르렀다.


벌써 신생아 때 입던 바디수트의 단추가 잘 안채워진다. 꽉 낀 소세지처럼 수트 안에 갇힌 듯한 모양새가 우스워 아기를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진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누구는 죽고, 누구는 늙고 누구는 살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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