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탐구-'요리' 편

by 비유리

우리 할머니는 참 한결같이 요리를 못한다. 예전에도 못했고 지금은 뭐 연세가 많이 드셨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엄마 밥보다 할머니 밥을 더 많이 먹고 자란 입장에서 그 요리를 품평하는 행동이 몹시도 양심에 찔리지만 내 동생도, 아빠도, 할머니의 요리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나의 의견에 반박하지는 못할 것이다. 할머니 요리는 심히 맛이 없다. 이 글은 진정으로 할머니의 요리를 품평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웃음과 사랑, 그 속에서 피어나는 글임을 앞서 알린다.


할머니 표 찌개는 끓이는 순서가 항상 같다. 아니 말하고 보니 순서랄게 있나 싶다. 그냥 되는대로 물에 넣고 끓이다가 다 같이 끓어오르고 나면 끝이다. 밭에서 나는 재료, 그러니까 배추, 양파, 감자 그런 것들을 한번에 썰어놓고 끓지도 않는 물에 풍덩 넣는다. 순서대로 차곡차곡 넣으면서 특별히 더 볶는다거나 지진다거나 하는 단계는 없다. 김치찌개면 여기에 김치가 추가되고 된장찌개면 된장을 푼다. 그리고 다시다 왕창에, 두부, 고춧가루 다진 마늘 끝. 와르르 한 번 끓어오름과 동시에 요리가 끝이 나기에 깊은 맛 따위는 없다. 김치는 아삭거리고 양파는 펄펄 살아있다. 거의 붓는 수준으로 다시다를 넣기에 무슨 맛이 나기는 나는데 당연히 맛은 없다.


닭볶음탕은 단언컨대 할머니 음식 중 맛없기로 1등인 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일단 물이 너무 많다. 자고로 닭볶음탕이라 하면 빨간 양념이 끈적하니 닭고기에 달라붙어 자작한 느낌을 내줘야 밥도 비벼먹고 감자를 으깨서도 먹고 할텐데 할머니 닭볶음탕은 ‘볶음’보다는 ‘맑은 탕’에 가깝다. 이 또한 찌개를 끓이는 방식과 같다. 끓지도 않는 물에 닭을 넣고 고추장을 풀고 파, 양파, 다진마늘,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은 뒤 물이 끓어오르면 요리는 끝이다. 물이 너무 많으니 닭에 양념이 베지 않아 허옇게 살을 드러내고 있는 와중에도 한 입 먹어보려고 다리를 잡고 뜯어보면 닭이 다 익지 않아서 속이 빨개 황급히 다시 가스 불에 얹곤 한다.

‘아까운 닭 한 마리.. 제대로 먹혀보지도 못하고 할머니의 손에서 의미 없이 목숨만 낭비했구나.’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펄펄 살아있는 대파와 함께 고추장 맛 밖에 안나는 떡볶이, 매번 물 붓고 다시 끓여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는 청국장, 도대체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양념 간장, 소금이 버석버석 씹혀서 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콩나물 무침.. 이제는 할머니 음식을 먹어본지가 하도 오래되어 그 맛이 잘 기억이 안난다. 곧 아흔을 앞둔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매 끼니 한결같이 요리에 매진하고 있는데 그 요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사람은 다름아닌 할머니 본인이다. 삼시세끼 옆집에서 밥을 해오는 딸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흔을 앞둔 고령의 몸으로 매일 오직 자신만을 위해 요리하는 여성, 멋지지 않은가?


부디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터무니없지만 내가 낳은 자식이 자식을 낳을 때까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영원히 맛없는 음식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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