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적인’ 이라는 단어 뒤에 노력 보다는 재능이 주로 붙는다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누구나 안다는 뜻이다. 나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을 가졌으니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발냄새. 어릴 때는 내 발냄새가 ‘개쩐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말할 일도 딱히 없었고 말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이 곳에 내 발냄새가 그야말로 개쩐다는 사실을 이렇게 적고 있자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발냄새가 개쩔게 지독한 이유는 내가 손발에 땀이 매우 많이 나는 증상인 다한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손,발 할 것 없이 방금 씻고 나왔나? 할 정도로 땀이 많은데, 이게 손은 바람도 통하고 쉽게 씻을 수도 있으니 냄새를 면할 수 있었고 발은 그렇지 못하니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된 것이다. 하루 웬종일 양말 너머 신발에 갖혀 땀을 응축하고 있으니 발냄새가 안날라야 안날 수가 없는 그런 안타까운 구조이다.
나는 발냄새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모든 아이들이 신발을 넣어놓는 신발장에서 내 신발 근처에만 가면 꼬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친구들이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냐 물으면 머쓱하게 모른 체를 하며 시치미를 뚝 떼는 표정 연기를 해야했다. 그래도 여자들만 모여사는 곳에서 그 정도 곤란은 양반이었다.
스무살이 넘어 자취를 하고 남자친구들의 집에 놀러갈 때 더욱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현관에 들어서 양말을 벗는 순간 대학생들이 사는 5평 남짓한 원룸에 내 발냄새가 퍼지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양말을 하나씩 더 들고 다녔다. 양말을 챙기지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런 방문을 할 때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 잠시만 !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냅다 발부터 씻었다. 그러면 신고있던 축축한 양말을 입고온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그러면 주머니까지 같이 눅눅해진다. 가끔 주머니조차 없는 옷을 입으면 정말 곤란의 곤란 그 자체였다. 이것도 사귀고 얼마쯤이나 기간이 지나야 할 수 있는 행동이지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에 방문하자 마자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양말을 벗고 발을 씻고 나오는 것은 당시의 나에겐 매우 어려운 행동이었다.
땀으로 축축해진 발을 엄마 다리에 문지르는 악취미를 갖고 있기도 했다. 양말을 신으나 안신으나 발에 언제나 땀이 나서 신었던 양말은 빨래가 덜마른 듯 눅눅해지고 신발또한 그렇다. 자려고 누우면 발 쪽 이불이 축축해지는 것도 덤이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땀에 절은 손은 엄마 얼굴에, 땀에 절은 발은 엄마 다리에 문지르며 놀았는데 엄마는 이 행동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질색을 하며 어우 하지마 ! 하고 팔꿈치로 내려찍기도 했다. 나는 그 반응이 웃겨서 계속해서 장난을 쳤다.
-아니 엄마가 낳았잖아. 낳았는데도 내 땀이 더러워?
-응. 더러워.
지금까지도 더러운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더 더러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쩌면 나는 조금 더러운 것을 좋아하는 특이 취향을 가진 여성일지도?
-발표합니다. 나는 내 발냄새를 좋아한다!!!!
내 발냄새는 지독하지만 중독적이다. 양말을 세탁기에 넣을 때 그냥 넣으면 왠지 아쉽다. 축축한 양말 끝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유독 지독한 날은 이거 이거 나 혼자 맡기에 아깝다. 어디 내 발냄새를 같이 음미해줄 사람이 없나? 사실 그건 나를 낳은 엄마도 하기 힘들어했던 행동이다. 양말의 흡수 능력에 따라 매일의 냄새가 다르다. 유난히 많이 뛰어다닌 날은 더 지독하기도 하다. 하루동안의 노동과 땀의 척도를 파악할 수 있는 나의 발냄새.
사실 이건 유전이다. 땀이 유전은 아니고 발냄새가 유전이다. 바로 아빠로부터 온 것. 그래서 아빠, 나 , 내 동생은 모두 발냄새가 지독하다. 아마도 동생은 나랑 비슷하게 땀도 많은 것 같다. 엄마는 언제나 발이 뽀송하게 건조하고 냄새도 전혀 안난다. 사람의 발에서 그렇게 아무 냄새도, 그야말로 ‘무’냄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만큼 엄마는 발냄새가 안났다. 세탁기에 넣기 전에 양말 냄새를 맡아보고 집어 넣는 것도 유전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빠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역시 부모는 자식의 거울. 동생이랑은 서로의 양말 냄새 오래 맡기 대회를 한 적도 있다. 내가 아무리 개똥밭에 구르다 와도 동생 냄새는 못 이긴다. 거긴 더 개쩐다. 내가 이틀 신었던 양말 vs 동생이 하루 입었던 티셔츠로 대결해도 내가 진다.
내 발냄새가 지독한 이유. 말 그대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사느라 그렇다. 앞으로는 누가 나의 발냄새를 함께 맡아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