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미치는 영향

by 비유리

안좋은 기억력 탓인지, 불우했던 유년시절 탓인지 옛날 기억이 대부분 잊어졌거나 흐릿한데 굉장히 뚜렷하게 남아있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뭇잎이나 나무껍질같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를 구해 위에 종이를 덧대고 색연필을 칠해 탁본을 뜨는 수업을 들었다. 아마도 과학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활동 마지막에는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을 쓰는 숙제를 받았다. 나무를 찾아다니며 탁본을 뜨는 일보다 활동 소감을 쓰는 활동이 더 재미있었다.

초등학교를 둘러싼 나무들에는 다른 반 친구들이 이미 탁본을 뜨는 수업을 했는지 색연필 자국이 남아있었다. 종이 바깥으로 삐죽삐죽 삐져나간 색연필 자국들을 보며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이 나와 같은 나무 앞에서 나와 같은 행동을 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정이 갔다. 그 이야기를 소감문에 적었다. 탁본 활동을 통해 느낀 과학적인 지식에 관한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그것들은 내게 그렇게 큰 자극을 주지 못한 탓이겠다.


소감문을 검사하신 담임 선생님(아직 성함도 기억날 만큼 생생한데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께서는 내가 적어놓은 글의 한 부분에 빨간 플러스 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으셨다. 밑줄이 쳐진 글은 이 부분이었다.

-나무 껍질에는 다른 반 친구들이 이미 탁본을 뜨는 수업을 했는지 색연필 자국이 남아있었다.

해당 문장에 밑줄을 그으신 뒤 답글을 달아주셨다.

-관찰력이 정말 좋고 글을 잘 쓰는구나!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의 칭찬으로 완전히 인정받은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칭찬에 힘입어 열심히 글을 써왔다. 교내 교외 할 것 없이 매년 백일장에 참가했다. 때로는 1등을 해 전교생 앞에서 상장을 받기도 했다. 지극히 자랑스러운 순간들이었다. 30대가 되었다. 상장을 받지 못한지 한참이 지났으나 여전히 글은 쓰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느끼는 이 복잡하고도 섬세한 심리를 묘사하는 그 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지 못해 답답한 순간들이 많다. 마치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지 못하고 그 언저리만 벅벅 긁어대는 꼴이 떠오른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맞았나? 아니, 글을 잘 쓴다는 건 뭘까? 언제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머릿속은 조용할 틈이 없다. 관찰력이 좋아 더 시끄러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담임 선생님의 칭찬은 할 말을 겨우겨우 쥐어짠 형식적인 말씀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렇게 성의도 영혼도 없는 칭찬을 입에 달고 사니까. 그랬거나 말거나 지금은 그 진위를 가릴 수 없으며, 설령 그 말이 가짜였다 한들 십 수년간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왔던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 뒤늦게 고뇌에 빠진 나는 생각한다. 나는 글을 잘 쓰나? 그건 모르겠다. 관찰력이 좋나? 그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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