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아주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고 싶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사실들.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는 그런 것들.
엄마는 20대 때부터 흰머리가 많았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날 모든 순간 백발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인 듯하다. 엄마의 흰머리는 골고루가 아니었다. 이마를 따른 헤어라인과 특히 관자놀이 쪽에 밀집해 있었는데 겉에 덮인 머리를 들추면 안쪽은 하얗게 은빛이었다. 처음에는 이를 감추고자 새치용 염색약을 부지런히 사 발랐지만 이내 흰머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엄마는 아예 작전을 바꾸었다. 흰 머리에 애쉬빛 카키색과 갈색을 덮어 오묘한 색을 내보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일 년에 한번정도 미용실에 방문하는, 특히나 머리에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48세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특이한 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려서 엄마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머리 색깔로 강하게 엄마를 기억하곤 했다. 엄마가 죽고 베갯잇에서, 침대와 벽 틈에서, 머리빗에서 남은 애쉬빛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발견할 때마다 나는 심장에 추를 단 듯 깊이 가라앉았다.
엄마가 죽고 몇 달간 나는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따라 집을 찾아가는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처럼 엄마의 흔적을 따라 다녔다. 엄마가 참여한 지 겨우 두어 달 된 독서 모임 회원들을 만나고, 대학시절 같이 학교 신문을 만들었던 동아리 친구들을 만났다. 엄마의 머리를 애쉬빛으로 염색 해주신 미용실 원장님까지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부고 소식을 들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를 보고 미용실 원장님은 굳이 여기까지 왜 왔지? 하며 당황을 하셨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손가락도 길고 손톱도 길었다. 예쁘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그런데 손톱이 약해 잘 깨졌다. 손톱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 먹었던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매니큐어를 발랐다. 미용실에 돈을 쓰지 않던 엄마는 손톱에도 마찬가지였다. led 기계로 젤네일을 하거나 네일 샵에 가서 돈을 들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 손톱에 매니큐어를 몇 번 발라보았지만 내 손에는 매니큐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피부가 까맣고 마디 사이 사이 주름이 진데다 손톱까지 짧고 뭉툭해 도저히 아름답지가 않았다. 거칠고 작기까지 했다. 빨갛게 혹은 노랗게 올려진 매니큐어 색깔이 안그래도 까만 피부를 더욱 까맣게 보이게 했고 옹졸한 면적을 차지하는 매니큐어 색깔은 보기에 애처롭기까지 했다. 엄마는 말했다.
-하이고. 손이 왜 이래? 이 손으로 피아노는 어떻게 쳐?
-엄마가 낳았잖아.
엄마랑 반대로 나는 새치 한 가닥 없는 새카만 머리에 짧고 뭉툭한 손톱과 손가락을 가졌다. 머리를 빗으면서 손톱을 깎으면서 엄마에 관한 아주 사소한 것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엄마가 나의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몰라. 엄마를 떠올리는 나를 보며 감동하고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