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내 마음에 든 지

by 비유리

나의 외삼촌은 세 번 결혼했다. 그중 두 번째 외숙모가 조금 무서웠다. 외삼촌 집에 놀러 가서 하루 자고 오던 날 외숙모는 내가 양치질하는 것을 빤히 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당시에 칫솔을 위 아래가 아닌 양 옆으로 문지르며 양치질을 했다. 그게 빠르고 쉬웠기 때문이다. (새)외숙모는 내가 하는 양치질을 흉내내며 한 번 웃었다. 나는 그 웃음앞에서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렇게 양치질을 하면 이와 이 사이가 닦이지 않는다며 위에서 아래로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위에서 아래로 닦으며 이제 되었냐는 눈빛을 보냈다. (새)외숙모는 끄덕였다.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었다. 왠지 (새)외숙모 앞에서는 더 그랬다.


엄마와 떨어져 살던 때에 나는 할머니 손에서 컸는데, 할머니는 나에게 양치질 하는 방법을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일단 할머니부터 양치질을 외출할 때만 하는 것으로 여기곤 했으니 올바른 양치질 방법 같은 것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릴 때 잘 못 잡힌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서면서 엄마와 살기 시작한 나는 그제서야 하루 세 번 양치질 하는 습관을 들이느라 많이 혼이 났다.


시골 깡촌에서 자란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에 살면서 아궁이에 팔팔 끓인 물에 찬물을 섞어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 샤워를 하고 나면 젖은 머리와 젖은 몸을 수건으로 둘둘 감고 온 몸에 김을 풍기며 집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슬리퍼 사이로 모래가 들어와 발은 씻으나 마나였다. 집이 산골짝에 있으니 친구들을 제대로 초대해본 적도, 친구와 함께 걸어서 등교를 해본 적도 없었다. 과자라도 먹을라 치면 일주일에 두 번 트럭에 물건을 실어 오는 ‘슈퍼장사(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불렀다.)’를 기다렸다가 슈퍼장사가 실어온 물건 안에서만 골라 사 먹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알았다. 나는 그렇게 산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나만 보면 딱하다고 하는 동네 할머니들의 말을 들으며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다. 엄마랑 같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도, 양치질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도,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에 산다는 사실도. 모두 부끄럽고 동시에 불쌍했다. 그래서 나는 (새)외숙모 앞에서 그렇게 주눅이 들었나보다.


지금의 나는 2024년에 지어진 ‘초품아’ 아파트에 산다. 아직 새 건물 냄새가 풍겨 공기청정기를 들여 24시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새집 증후군에 안 걸릴 수 있다나 뭐라나? 내가 낳은 아기는 이가 남과 동시에 양치질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아궁이로 팔팔 끓인 물에 찬물을 섞어 세숫대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물이 적당히 식기를 기다리는 일도 절대 겪지 않을 것이다. 집 앞에는 편의점이 있다. 아침에는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고 비가 오면 내가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가서 기다릴 수도 있다. 그것이 나에게 위안이 되고 행복이 된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스스로 불쌍하다 여기던 때의 나를 함께 키운다. 내 인생 이제야 내 마음에 든다. 이렇게 되기까지 3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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