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리 Feb 09. 2022

바디스크럽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

나는 누구인가?

완전한 나 같은 건 없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며 너를 만나고 그를 만난다. 그들과의 갈등, 추억, 사랑 같은 것들이 내 삶에 스며 습관을 만들고 취향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순도 100퍼센트의 완전한 나 같은건 없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김승희 산문집에 나온 내용이다. 내 삶에도 4분의 3의 당신들이 그득하다.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나의 4분의 3에 대해 알아챘다.


  향기가 나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왔다 간 날 그 향기가 최소 삼일은 갔다. 베개와 이불에는 그 향기가 한참을 머물렀다. 사람이 없이 그냥 향기만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친구가 떠나고 샤워용품을 사러 갔다. 이것저것 냄새를 맡아보고 꽤 까다롭게 쇼핑에 임했다. 샴푸, 린스부터 로션까지 꼼꼼이 챙겨 다니는 그를 어딘가 따라 해 보고 싶었다. 그러면 나에게도 그런 향기가 날 것 같았다. 분홍색 바디스크럽을 샀다. 스크럽을 사용해서 알갱이가 녹을 때 까지 내 몸을 문지르고 따뜻한 물을 끼얹었더니 욕실 전체에 달콤한 향기가 퍼졌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도 피부가 촉촉했다. 햇빛 아래 말려 바삭해진 잠옷을 세트로 입고 침대에 누웠더니 갑자기 어제와 같은 밤인데도 더 행복한 것만 같았다.


  스크럽을 하는 습관은 나의 4분의 1이 되어 아직도 남아있다. 기분이 꿀꿀하거나 왠지 우울한 날이면 샤워 시간을 길게 잡고 스크럽 알갱이가 녹아 없어질 때 까지 내 몸을 문지른다. 바삭한 잠옷을 입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포근한 향기가 다음 날 아침까지 간다.


누군가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


작가의 이전글 나는 참 모순된 사람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