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작곡을 올린다. 유튜브랑 비슷한 것인데 내가 직접 녹음한 음악을 업로드하면 아무나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이다. 2년 전에 우연히 추천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있던 나의 자작곡들을 년도와 날짜별로 쭉 정리 해 놓으니 이제는 제법 많은 곡들이 쌓였다.
고3 석식 시간에 잠시 외출증을 끊고 나와 약국에 가는 길에 마주친 남자아이를 보고 반해서 쓴 곡이 내가 처음으로 만든 자작곡이다. 그 곡을 시작으로 나는 아주 많은 곡을 만들었고 2020년 여름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부터는 꽤나 심오한 곡도 많이 썼다. 듣고 있으면 그 때의 감정과 느낌이 생생히 되살아나서 다시 듣기 힘든 곡들도 몇 곡 있다.
만난지 2주 정도 된 남자친구가 나의 사운드클라우드를 궁금해 했다. 나는 다는 못 보여주고 몇 곡만 골라서 들려주겠다고 했고 밝고 명랑한 곡을 두 세곡 골라 들려주었다. 다른 곡들도 궁금하다고 하길래 그건 들려줄 수 없겠다고 말 했다.
'미안, 다른건 좀 그래. 너무 사적인거라서.'
남자는 그 뒤로도 몇 번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다른 곡들에 대해 내게 질문했다. 그 때 마다 나는 안된다고 딱 잘라 말 했다.
나한테는 그렇다. 노래만큼은, 가사 만큼은 거짓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만든 음악은 나의 전부이다. 나는 그런 나의 민낯을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슬픔에 허덕이던 과정을, 살려고 몸부림쳤던 순간들을 보여주고싶지 않았다. 내가 삶을 대하는 그 깊이를, 그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노래를 듣고 나의 가치관과 고심의 깊이에 대해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아무튼간에 안된다고 잘라 말 했는데 그 남자는 몰래 내 자작곡을 전부 다 듣고 와서는 내게 용서를 구했다.
내가 분명 보지 말라고 말 했건만, 호기심에 못 이겨 그걸 다 찾아보고 와서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철 없게 느껴지던지. 그 남자는 갑자기 이러는게 어딨냐며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끝냈다. 남자는 계속 연락을 해왔다. 전화를 하고, 카톡을 하고, 우리 집 앞에서 밤 새 기다리며 편지를 주고 가기도 했다. 편지 내용은 더 실망스러웠다.
나의 자작곡들은 그야말로 내 역사이기 때문에 19살부터 내가 만났던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 그 곡들 중간중간 엄마 이야기도 있고, 친구 이야기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내가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열등에 대해, 미움에 대해 생각하는 고뇌의 순간들이 그득한데 그 남자는 내 지난 연애사에만 관심이 있었다. 편지 내용은 대충 이랬다.
'전 남자친구들 이야기 때문에 그러는거라면 신경 안써도 돼. 지난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어.'
남녀 사이니 어쩔 수 없겠다 싶으면서도 나는 왜 진짜 나를 알아봐주지 못하고 내 연애사에만 온통 관심이 쏠렸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실망감이 컸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나의 고뇌에 대해, 나의 깊이에 대해 공감받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척 해도 나는 누구보다 '나' 라는 사람을 알아 봐주길 원하나보다. 그러니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고,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내가 만든 노래를 올리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 남자가 나의 노래들을 듣고 '너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너의 몸부림들을 결코 가볍게 듣지 않았어.' 라고 말 했더라면, 나는 그와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울었을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라도 나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꺼려하지만, 나를 모르는 그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까지 끄집어낸 글 한바닥을 거리낌없이 내 놓는다. 나는 참 모순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