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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09. 2022

나는 참 모순된 사람이야

  나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작곡을 올린다. 유튜브랑 비슷한 것인데 내가 직접 녹음한 음악을 업로드하면 아무나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이다. 2년 전에 우연히 추천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있던 나의 자작곡들을 년도와 날짜별로 쭉 정리 해 놓으니 이제는 제법 많은 곡들이 쌓였다.

  고3 석식 시간에 잠시 외출증을 끊고 나와 약국에 가는 길에 마주친 남자아이를 보고 반해서 쓴 곡이 내가 처음으로 만든 자작곡이다. 그 곡을 시작으로 나는 아주 많은 곡을 만들었고 2020년 여름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부터는 꽤나 심오한 곡도 많이 썼다. 듣고 있으면 그 때의 감정과 느낌이 생생히 되살아나서 다시 듣기 힘든 곡들도 몇 곡 있다.


  만난지 2주 정도 된 남자친구가 나의 사운드클라우드를 궁금해 했다. 나는 다는 못 보여주고 몇 곡만 골라서 들려주겠다고 했고 밝고 명랑한 곡을 두 세곡 골라 들려주었다. 다른 곡들도 궁금하다고 하길래 그건 들려줄 수 없겠다고 말 했다.

'미안, 다른건 좀 그래. 너무 사적인거라서.'

  남자는 그 뒤로도 몇 번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다른 곡들에 대해 내게 질문했다. 그 때 마다 나는 안된다고 딱 잘라 말 했다.


  나한테는 그렇다. 노래만큼은, 가사 만큼은 거짓으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만든 음악은 나의 전부이다. 나는 그런 나의 민낯을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슬픔에 허덕이던 과정을, 살려고 몸부림쳤던 순간들을 보여주고싶지 않았다. 내가 삶을 대하는  깊이를, 그는 절대로 이해할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노래를 듣고 나의 가치관과 고심의 깊이에 대해 알아보지 못한다면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울  같았다. 아무튼간에 안된다고 잘라  했는데  남자는 몰래  자작곡을 전부  듣고 와서는 내게 용서를 구했다.


  내가 분명 보지 말라고 말 했건만, 호기심에 못 이겨 그걸 다 찾아보고 와서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철 없게 느껴지던지. 그 남자는 갑자기 이러는게 어딨냐며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끝냈다. 남자는 계속 연락을 해왔다. 전화를 하고, 카톡을 하고, 우리 집 앞에서 밤 새 기다리며 편지를 주고 가기도 했다. 편지 내용은 더 실망스러웠다.


  나의 자작곡들은 그야말로 내 역사이기 때문에 19살부터 내가 만났던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 그 곡들 중간중간 엄마 이야기도 있고, 친구 이야기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내가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열등에 대해, 미움에 대해 생각하는 고뇌의 순간들이 그득한데 그 남자는 내 지난 연애사에만 관심이 있었다. 편지 내용은 대충 이랬다.

'전 남자친구들 이야기 때문에 그러는거라면 신경 안써도 돼. 지난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어.'

남녀 사이니 어쩔 수 없겠다 싶으면서도 나는 왜 진짜 나를 알아봐주지 못하고 내 연애사에만 온통 관심이 쏠렸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실망감이 컸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나의 고뇌에 대해, 나의 깊이에 대해 공감받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척 해도 나는 누구보다 '나' 라는 사람을 알아 봐주길 원하나보다. 그러니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고,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내가 만든 노래를 올리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 남자가 나의 노래들을 듣고 '너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너의 몸부림들을 결코 가볍게 듣지 않았어.' 라고 말 했더라면, 나는 그와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울었을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라도 나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꺼려하지만, 나를 모르는 그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까지 끄집어낸 글 한바닥을 거리낌없이 내 놓는다. 나는 참 모순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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