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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r 13. 2022

사랑해요 나의 운명의 상대들( ⸝⸝•ᴗ•⸝⸝ )੭⁾⁾


  20년에 계약직 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임용고시에 두 번 떨어지고 너무 무기력해진 상태였고 삼수때는 일자리를 구해야겠다 생각했다. 엄마가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때 나는 옆에서 이력서를 썼다. 경력 칸을 단 한 줄도 채우지 못하고 텅텅 빈 이력서를 100장 쯤 썼을까 딱 한 군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에 살던 집에서 지하철로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갔다. 그 학교 음악 선생님과 다른 몇 분의 선생님 앞에서 간단하게 수업시연을 하고 면접을 봤다. 시험을 보고 나와 다시 한시간 반을 달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앞 지하철역에 카드를 찍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면접에 합격했다, 우리 학교에서 일 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계약서를 쓰러 학교에 다시 방문 했을 때 음악선생님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선생님이셨다. 음악선생님께서 말씀 하시길, 면접장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경력도 없고 나이도 어리고 심지어 학교에서 너무 멀리 살기까지 해서 그다지 뽑고싶지 않아 하셨단다. 하지만 본인이 이 선생님이라고 강력하게 주장 하셔서 나를 뽑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감사하고 또 기뻤다. 엄마도 역시 우리 딸 해낼 줄 알았다며 함께 기뻐했다. 그게 내 첫 사회생활이었다.


  하지만 계약과 동시에 코로나로 학교 일정이 밀리고 밀려 4월이 되어서야 온라인 클래스로 개학을 했고 6월이 되어서야 첫 대면 등교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같은 달 25일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1년짜리 계약직이었어도 어쨌거나 내가 학교 칠판 앞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생님' 소리를 들었던 모습을 엄마가 한 번이라도 보고 떠나서 마음이 조금은 덜 쓰리다. 그래서 그 선생님께 두고두고 더 감사하다.

  엄마가 입원을 하고 삼성병원 로비에서 여러 밤을 새울 때, 학교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업 관련해서 선생님과 연락을 하게 되었고 내 사정을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퇴근 후에 병원에 들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저녁에 병원에 오셔서 밥을 사주고 가셨다. 병원에서의 기억을 자세히 되짚어 글로 쓰는것이 아직 힘들다. 짧게 말하자면 선생님은 병원에 오셨을 때도, 내가 장례를 다 치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도 나를 항상 챙기셨다.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니 계약기간과 상관 없이 학교를 그만 둬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일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구한 일자리였고, 내가 학교에서 일 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뿌듯해하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또 뭐라도 해야 슬픔을 떨치고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학교 일 덕분에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고 실제로 겨울 방학과 함께 그 학교와 계약이 끝나고 다음 해 2월, 다른 학교와 계약하기 전까지 약속도 모두 취소하고 집에만 박혀 우울의 늪에서 헤맸었다. 그걸 생각 해 봐도 나는 하루라도 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 선생님께 두고두고 감사했다. 정말로.  


  최종합격 발표 하루 전 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눈을 아무리 감고 있어도 도무지 잠이 안오길래 행복회로를 돌려보았다. 합격하면 누구한테 소식을 알리지? 음악선생님이 생각 났다. 작년에 꼭 나여야만 한다며 무경력인 나를 믿고 뽑아준,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버틸 수 있게 한 기회를 준 그 음악선생님께 꼭 연락해야지, 다짐을 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10시. 발표를 확인하고 선생님께 1년만에 전화를 드렸다. 내 전화를 받자 마자 '선생님!! 혹시..?' 하면서 내 소식을 물으셨다. 합격 소식을 알리고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퍼지는 기분이었다.


  합격 이후 발령을 받은 학교에 인사를 드리고 예체능부 선생님들과 첫 교과협의회를 했다. 협의회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학교에 음악선생님이 한 분 더 계셔서 먼저 인사를 드렸는데 나에게 어느 학교를 졸업했냐 물으셨다. 그런데 세상에나 우리 학교 10학번 선배였다. 10학번 오빠들은 내가 1학년 때 4학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먼 학번이 아니었어서 너무 신기했다. 너무 친근해서 거기서 바로 언니라고 부를 뻔 했다.

  우리 학교는 전체 교원이 80명이 넘는 큰 학교인데다 신규교사가 두 명 뿐이어서 학교 자체가 누군가를 챙겨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렇게 학교 선배가 같은 교과 선배 교사로 있으니 너무 든든했다. 언니(나중에 둘만 있을 때, 다른 선생님들 없을 때는 그냥 언니라고 하라고 했다.ㅎㅎ)는 공강 때 내가 있는 교무실까지 와서 간식도 주시고 수업 자료는 아예 외장하드 통째로 주셨다. 또 부장 선생님들께 나를 소개해주신 덕에 선생님들과 훨씬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교감선생님께 혼나서 교무실에서 몰래 울었을 때도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었다. ㅜㅡㅜ 흑 또 눈물날려하네


  타지 생활이 외롭다고 했더니 언니가 소개팅을 해준다고 해서  늦게까지 카톡으로 수다를 떨다가 언니 프로필을 구경하게 되었다. 사진이 꽤나 많았는데 사진을 넘기던 중에 익숙한 얼굴이 있어서 여러번 다시 확인했다. 내가 서울에서 계약직으로    나를 뽑아준  음악선생님이었다. 너무 놀라서 바로 물어봤더니 언니 10학번 동기인데 제일 친한 친구라고 했다. 언니랑 나랑   너무 놀라서 한참을 이야기 했다. 세상에나, 이럴수가 있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2020년과 현재의  순간이 번갈아 떠오르며 너무 벅차고 찡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주책~)


  세상을 살다보면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운명 혹은 인연 같은 것이 있나보다. 계획이나 의지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정말 꼭 만나야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정말로 있나보다.

  사랑해요 지금까지 만난 그리고 앞으로 만날 나의 운명의 상대들 ( ⸝⸝⸝⸝ )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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