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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r 27. 2022

만약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가정은 너무 슬퍼

  때때로 ‘만약이라는 가정이 내게 너무 잔인한 순간이 있다. 합격 후에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텐데.’라는 말을 들었을  그랬다. 당연히 엄마가 너무나 좋아했을 것을 알기에,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파질 것을 알기에 나는 생각 하지 않았다. 그런 가정은 내게 너무 아프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이 세상은 우연더미 속에서 얼렁뚱땅 굴러가는 것 같다가도 사실 그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운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엄마가 그렇게 떠날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 운명이라는 말 앞을 앞에 두고선 어떤 의의도 제기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어떤 것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허무하다면 허무하게 엄마를 잃고 나니 세상에는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있고,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아등바등 한다고 해서 절대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죽고 사는 문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문제, 시험에 붙고 떨어지는 문제 같은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본래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기에 나는 그저 나라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들만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 보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하루, 나의 습관, 내가 오늘 먹을 것, 나의 월급 정도다. 그렇게 살다보면 가벼워진다. 크게 스트레스 받을 것도 없고 크게 절망 할 일도 없다.

  그러니 만약에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이라는 말을 들었을  그저 그렇게  일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머리로는 생각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나에게  살까지 살고 싶냐고 물었다. , 나는 그냥 세상이 허락하는 만큼? 이라고 답했다. 너는? 하고 물으니 자긴 100살까지 살고 싶단다. 오래 살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너는 오래 살고 싶지 않냐고 묻길래 딱히.  내일 죽어도 상관없어. 라고 했더니 당황을 했다.

  남자친구는 나를 비관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는  했지만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내일 죽고 싶다고  것이 아니라, 죽어도 상관없다고  것이다. 나는 언제든 내게 허락된 시간만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고 그것이 내일이라 해도 기꺼이 긍정하겠다는 의미인데, 남자친구는 이해를  하는  했다. 그렇게  일이 그렇게 되듯이 우리는 금방 헤어졌다.


  어쩌면 '만약 엄마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만약 엄마가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했다면, 만약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하는 가정이 괴로워서 그냥 운명을 믿어버리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운명이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삶의 무게가 가뿐해졌으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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