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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y 01. 2022

손바닥을 힘껏 펼쳐보자

놓아주는 연습을 하는거야

권여선의 <레몬>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 지어내려 해도, 없는건 없는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중략)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수는 없을까.


  이전에 나는 그랬다. 나의 깊이에 대해 남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때때로 얼마나 깊은 사색에 잠기는지, 혼자 있을 때 얼마의 눈물을 흘리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외로운 탓이었을까 혹은 어린 탓이었을까 아무튼 그랬다. 엄마가 죽고는 나를 거두어들이는 일에 몰두했다.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개의치 않고자 노력했다. 주먹을 꼭 쥐고 어떤 것을 얻기보다는 손바닥을 쫙 펴고 무엇이든 놓아주는 연습을 했다.


  엄마는 집안 곳곳에 작은 화병을 두고 길에서 마음대로 꺾어 온 꽃을 꽂아 두었다. 나무가 아파할 것이라고 그러지 말래도 한 가지는 괜찮다며 늘상 그렇게 했다. 딱 이맘 때 쯤이었다. 엄마와 함께 등산을 갔다가 내려 오는 길. 어김없이 엄마는 산 등성이의 야생화 가지를 하나 꺾었다. 영산홍 한 가지 였는지, 진달래 한 가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엄마는 꺾은 나뭇가지를 물병주머니 옆의 작은 공간에 꽂아두었고 우리는 함께 집으로 걸었다. 자그마한 나뭇가지에 아직 생생히 달려 있는 꽃도, 설레는 마음으로 꽃 가지를 집으로 싣고 가는 엄마의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집에 도착해서 물병 주머니에 있던 꽃 가지를 화병으로 옮기려는데, 꽃 가지가 사라져있었다. 엄마는 슬퍼하며 '그게 어디갔지? 오다가 떨어졌나봐!' 하더니 찾으러 나가겠다고 했다. 등산을 하고 돌아와 지쳐버린 나는 그걸 굳이 찾으러 가냐고 했다. 엄마는 꼭 나가야겠다고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엄마는 결국 떨어뜨린 꽃 가지를 찾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엄마와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안타까운 듯 '이게 여기 있었네!' 하며 아스팔트 바닥을 발 끝으로 가리켰다. 어제 엄마가 잃어버린 그 꽃 가지였다. 거의 다 말라 비틀어져있었지만 아직 분홍색 혹은 초록색이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있을 정도. 엄마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어젠 왜 못찾았지?' 통탄하며 그 꽃 가지를 발 끝으로 가리키던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었다. 어젠 그렇게나 생생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말라버린 그 나뭇가지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 후 며칠 내내 집 앞을 지날 때 마다, 엄마가 떨어트린 그 꽃 가지를 지날 때 마다, 우리는 점점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말라가는 꽃 가지를 애도하듯 그 앞에서 꼭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일주일 쯤 지났을까, 나는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엄마, 이제는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됐어.' 어느덧 완전히 말라 바스러진 꽃 가지가 왠지 무진장 슬프게 느껴졌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산다는게 뭘까? 어제까지만 해도 분홍색 꽃을 피우며 산 등성이에서 살랑이는 바람을 맞다가도, 다음 날 아스팔트 바닥에서 말라 비틀어질 수 있는 그런게 아닐까.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쪼그라들어 어디에 있었는지 찾기도 힘든 그 나뭇가지를 기가막히게 찾아내는 엄마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던만큼, 그 날의 기억은 내게 잔인하게 아프고 억울하게 행복하다. 그러나 나는 생각 해 본다. 산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라면 나는 말라버린 나뭇가지에 대한 기억을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말이다.


  새벽 등산길이었다. 흩뿌려진 진달래를 보고 나도 모르게 한 송이를 주워서 가방 보조 주머니 한 켠에 넣는 나를 발견하고 나는 한참을 엄마 생각에 몰두했다. 손바닥을 힘껏 펼쳐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느낌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놓아주는 것에 대해 능숙하고 싶다. 슬픔, 무게, 삶에 대한 증명 같은 것을. 그리고 생각한다. 햇볓과 그늘이 한 편인 것을 ,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이 한 편인 것을, 삶과 죽음이 한 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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