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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n 29. 2022

엄마 산소 가는 길

  지난주 토요일이 엄마 기일이었다. 음력으로 5월 20일. 사실 몰랐다. 잊고 살고 있었다. 기일을 아예 잊고 살았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오로지 양력 7월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소윤이었나 누가 나한테 음력 이야기를 해서 아차 싶어 찾아보니 지나있었다. 기일 같은 건 음력으로 챙기는 건데, 아무래도 27살이면 그런걸 잘 모를 수도 있는 나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죄책감을 달래보았다. 지난주, 그러니까 엄마 기일에 집에 내려갔었는데 까맣게 잊고 사느라 그냥 올라오는 바람에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난주 초 그러니까 월요일 아니면 화요일부터 ‘이번 주 주말에 또 집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엄마 산소에 가려면 한참 전부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일주일 만에 다시 집에 갔다. 토요일 아침에 성이랑 같이 엄마 산소에 가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혼자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갈 용기가 없어 지금껏 혼자 못 갔던건데 그 날은 그랬다.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제는 그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혼자 집을 나와 운전대를 잡는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다. 아.. 내가 이래서 혼자는 안가려고 했던건데...

  출발한지 몇 분 안돼서 눈물이 났다. 시선은 앞을 보고 눈물을 닦으면서 운전을 했다. 왜 자꾸 눈물이 나던지.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정말 많이 울었다. 차를 산지가 3개월이 넘어가는데 혼자 운전해서 엄마 산소에 가는건 처음이었다. 혼자 갈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아파서? 혼자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뭐라고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못 갔다. 

  산소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수박 한 통, 커피 한 캔, 명태포 하나와 정종을 한 병 샀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제사상을 차려주고 싶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 제사상을, 엄마의 오빠 제사상을 차리고 싶어했다. 나도 그렇네. 수고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늘 그들의 제사상을 차리고 싶어했던 엄마처럼 나는 지금 엄마를 위해 제사상을 차리고 싶다.


  꼬불꼬불한 길을 가다말고 중턱에 차를 세웠다. 트렁크에 있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명태포와 술, 커피를 챙겨 걸어 올라갔다. 운전해서 오는 길에 실컷 울어서 휴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 안챙겼는데, 올라가서 후회했다. 산으로 들어섰다. 산길에는 잡초가 한껏 자라 내 키만큼 오는 곳도 있었다. 고라니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내가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도망을 갔다. 풀숲을 헤치고 올라가니 엄마 산소 쪽은 잡초가 듬성듬성한 것이 꽤나 멀끔했다. 나는 맨손으로 듬성듬성 난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손이 쓸려서 조금 따가웠다. 잡초 주제에 뿌리가 깊어 두 손으로 체중을 실어 힘껏 당겨도 꼼짝 않는 것도 있었다. 내 힘이 약한 탓이겠지.     

  풀을 뽑으며 ‘엄마’하고 불러봤다.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무덤가 잡초를 뽑는데 엄마를 묻던 순간이 떠올랐다. 지금쯤 엄마는 다 썩어 흙이 되었을까? 눈물이 났다. 땀도 났다. 땀과 눈물이 섞여 턱에서 한 방울로 만나 뚝뚝 떨어졌다. 휴지를 가져 왔어야 했는데. 

  대충 풀을 뽑고 명태포를 뜯고 정종을 한 잔 따랐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절을 두 번 했다. 술을 세 번 나눠 부었다. 정종 향기가 올라왔다. 한 잔 먹고 싶었는데 운전을 해야해서 참았다. 술을 붓고 나서 다시 풀을 뽑았다. 봉분에 있는 자잘한 풀을 뽑다가, 주변의 키 큰 잡초를 뽑다가, 그걸 여러번 반복했더니 제법 깔끔해졌다. 

  

  엄마 옆에 앉아서 커피를 뜯었다. 엄마가 죽기 한 달 전쯤, 출판사에 넘길 원고를 마무리 한다고 매일 아침 빈속에 커피를 한 잔씩 먹었다. 복통의 원인이 소화불량인 줄 알았던 6월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빈속에 커피를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빈속에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두근 하면서 글이 잘 써진다고. 돌이켜보면 엄마는 커피를 즐겨 마셨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왜인지 이상하게 엄마 산소에 가면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엄마가 커피를 무지 좋아했던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글이 커피로부터 나온 것이라 그런가? 

  아무튼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카페라떼를 마셨다. 엄마는 달지 않은 카페라떼를 좋아했다. 브래들리의 취향이다. 때로 엄마는 브래들리의 취향을 닮고 싶어 하는 것 같이 그의 취향의 것들을 사랑하고 향유했다. 그래서 나도 라떼를 마신다. 엄마의 취향을 닮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내려가려고 짐을 챙기다 말고 다시 엄마 옆에 앉았다. 이번에는 관을 두면 머리가 있는 쪽에 앉았다. 엄마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에 무덤에 기대 보았다. 잔디가 푹신하게 가라앉았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빨리 갔냐는 말을 사람들이 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빨리 갔어. 푹신한 잔디를 몇 번 쳤다. 엄마가 밉기도 하고 또 전혀 밉지 않기도 하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죽고 내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은 2년 동안 다른 무언가로 대충이나마 얼기설기 메워진건지 아니면 그냥 그 채로 적응이 된건지, 2020년의 여름보다 가벼워진 그 슬픔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엄마가 진짜 옆에 있기라도 한 듯 혼자 주절주절 말을 했다. 그러면서 한참을 더 울었다. 어느덧 해는 머리 위로 와 있었다. 


  멍하게 산소를 내려와 차에 타서 물티슈로 팔, 다리, 손, 발, 얼굴을 다 닦았다. 트렁크에 발랄한 무늬의 돗자리와 함께 놓인 정종과 명태포가 어딘가 많이 서글퍼보였다. 나의 인생의 깊이를 설명하는 물건들처럼 느껴졌다. 언제고 싣고 다니다가 인생이 답답할 때 찾아와 술을 한 잔 붓고 절을 두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깊이는 고난과 고뇌, 슬픔 같은 것에서 온다고 나는 한 번 더 생각했다.      

  내려와서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 살 때는 크고 무겁게 느껴졌던 수박이 외가집 계단을 오르는 길에는 너무나 가볍고 작게 느껴졌다. 다음에는 더 많이, 더 큰 것을 사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기분. 손을 무겁게 해야 마음이 가벼워지는 인생의 궤도에 올랐구나. 내가. 

  외할아버지는 올 겨울에 한 이야기를 또 하셨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달력을 가리키며 지난주, 맞지? 하고 물으셨다. 음력 5월 20일인 그 날짜에 동그라미가 되어있었다. 그 동그라미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아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지만 그 동그라미는 내 시선을 따라 자꾸만 걸렸다. 외할아버지는 저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날짜 이틀 전 쯤에 동그라미를 쳤다가 엑스를 친 흔적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도 날짜가 헷갈리셨나?

  외할아버지 얼굴엔 웃는 모양으로 주름이 잡혔다. 말을 안하면 아무도 자식 셋 중에 둘을 먼저 보낸 부모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좋은 인상이다. 어쩌면 고난과 역경은 삶을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떠나고 나의 인생도 그 전보다 훨씬, 정말 훨씬 더 잠잠하고 가벼워졌으니 말이다. 그러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테지만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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