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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l 02. 2022

흙 묻은 운동화


  아빠는 끝내 엄마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이혼한지 10년도 더 지나 새로 한 결혼인데, 그게 아빠한테는 적잖은 배신감이었나보다. '이미 새 결혼까지 한 사람인데 내가 뭣하러 거길 가냐'며 끝내 오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그 마음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어쩌겠나, 나를 낳아준 두 명의 사람 중 하나 남은 우리 아빤데.

  그래도 아빠는 명절마다 계절마다 엄마의 제사를 챙긴다. , 챙긴다고 말하긴  그런가? 암튼. 어제께 나랑 성이, 아빠 셋이 있는 단톡방에서 아빠가 말을 꺼냈다. 엄마 제사가  와가지 않냐고.    붓고  두번 참신,    붓고  두번 강신이라는 말도 함께. 나는 지난주에 이미 다녀왔고 외할아버지도 뵙고 왔다고 답했다. 아빠한테 다시 답장이 왔다. 그래서  묻은 운동화가 있었구나.


  맞다. 장마철이라 땅이 질어 운동화에 흙이 잔뜩 묻었었다. 마르면 털어야지 하고 현관에 올려두었는데 그걸 아빠가 보았나보다. 어딜 다녀왔길래 우리 딸 운동화에 흙이 묻었을까 생각만 하고 나에게 묻지는 않았나보다. 아빠는 남자인 내 동생에 비해 나에게 간섭이 조금 심한 편이다. 나쁘게 말하면 간섭이고 좋게 말하면 관심이겠지. 암튼 옛날같으면 바로 나에게 어딜 다녀왔냐고 물어보았을테지만 요즘 아빠는 좀 변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었으니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도 묻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엄마가 죽고나서는 더 그렇다. 아마 이번에도 아빠는 내 운동화에 왜 흙이 묻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묻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 산소에 다녀왔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나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


  가끔씩 아빠와 엄마 이야기를 한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고, 대체로 아빠가 뜬금없이 엄마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지만 아빠 입에서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어색해진다. 하루는 아빠랑 안성에 갔다가 괴산을 거쳐 문경으로 가는 길에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른다고 했다. 아빠가 바람을 피다 들켜 포스코에서 쫓겨나듯 퇴직을 하고 문경으로 내려와서 살던 어느 날이란다. 아빠가 손님을 태워 괴산에 왔다고 오늘 저녁은 먹고 들어가겠다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때 전화를 두번, 세번해도 안받더니 한참만에 받아서는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끝이고 이혼 하자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날 찾지 말라고 했단다. 그 전화를 받은게 여기, 괴산 국도 휴게소 어디쯤 매운탕집 앞이었다고.


  엄마와 아빠에게도 젊은날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시점에서 1인칭으로 기억된다. 아마 아빠에게는 괴산 국도 어디엔가에서 들은 이혼통보가 충격이었다면, 엄마에게는 아빠의 바람을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몇 년이 가슴 시렸을테다.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으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는 아빠에게서밖에 들을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다 지난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사소한 모든 것을 나는 알고싶다. 엄마의 젊은날을 알고싶다. 시덥지 않은 것 까지 모두 알고싶다. 현관에 벗어둔 엄마의 운동화에 흙이 묻었다면 그게 왜 묻었는지를 알고싶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알고싶은 것일까? 마음이 싸르르 시려온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끼리는 현관에 놓인 운동화를 유심히 봐주며, 운동화에 흙이 묻어있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러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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