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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l 02. 2022

퀘렌시아: 나의 안식처

  투우장  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소만 아는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중략)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엄마에 대해 글로 쓰는 일이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그 양이 다를 뿐, 눈물과 콧물을 엮어 문장을 만든다. 한번은 내 글을 읽고 친구가 말했다. 너의 글은 정말 담담해. 그래서 더 슬퍼. 나는 내 글이 담담하게 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마음 속으로 굽이굽이 파도를 타면서 쓴 글인데, 그게 담담해보일수도 있구나.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한 편 한 편 글을 쓸 때 마다 눈물을 뽑고 파도를 타는데도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퀘렌시아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퀘렌시아는 어떤 장소가 될 수도, 행위가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내 삶 속에서 나를 쉬게 하며 나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 해 보았다. 나에게는 꽤 여러가지 퀘렌시아가 있었는데 그것들을 나열해놓고 보니 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혹은 엄마와 함께 했던 것들. 엄마가 죽기 전 나의 퀘렌시아는 주로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것들이라면 요즘은 주로 엄마가 했던 것들을 내가 따라서 하는 것만 같은 퀘렌시아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의 흔적을 따라하는 것 자체로 퀘렌시아가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수영에 완전히 빠져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운동 수영과 등산, 내가 꼭 빼닮았다. 일주일에 5번 강습을 받고 일주일에 7번 수영을 하러 간다. 나름의 거금을 내고 소수정예 레슨도 받는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꾸역꾸역 수영을 가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를 닮고 싶어서 수영에 이다지도 열심히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 속에 들어가 소리와 차단될 때, 그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빠짐없이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나에게 기타를 배워보라고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연주하기에 기타가 최고라면서. 그리고 길거리 연주로 돈을 벌어서 여행 경비에 보태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미뤄왔다. 엄마가 죽고   9월엔가, 문득 기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용 공부도 못하겠어서 잠시 공부를 접을 동안, 슬플  마다 기타를 쳐보자는 생각을 했다.  길로 당근마켓에서 10만원을 주고 낡은 기타를   사서 낮이고 밤이고 쳤다. 지금은 월급의  정도가 되는 기타를 샀다. 무슨 곡이든 제법 흉내는   안다. 연주 방법은 같고 소리내는 방식이 다른 베이스, 일렉기타에도 손을 뻗어볼  있게 되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때면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2020 9.   이게 이렇게   몰랐는데, 지금은 나의 안식처가  기타,  다른 나의 퀘렌시아.


  이번  말에 몽골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엄마는 여행을 정말 좋아했다. 여권에 도장찍는 페이지를  써서 재발급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엄마 말로는, 여행은 낯섦을  주고 사는 행위라고 했다. 편의점에서  한병만 사도  자신이 기특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있다고.  하필 몽골이냐고 주변에서 물어보면 나는 답했다. 나는 조금 힘든게 좋아. 거칠고 낯선것을 두려워하지 않고싶다. 사는 재미는 그런 것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분간은 통장 잔고가 바닥날  까지  돈을 두려움과 낯섦에 투자하고싶다. 내가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엄마가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이유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여행은 나의 빼 놓을 수 없는 퀘렌시아.


  늘 단단해보이지만 가끔은 혼자인 밤이 싫을 때가 있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술김에 훌쩍거리고 싶을 때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의 말에 혼자 끙끙 앓을 때가 있다. 나는 자꾸만 엄마가 했던 모든 것을 하고싶다. 엄마는 나의 피난처, 안식처, 퀘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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