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여, 감독을 죽여라 (1)

누벨바그와 작가주의의 태동

by 영화보는 정씨

1940년대 프랑스 감독들은 각본의 노예였다. 그들은 글로 쓰인 각본을 영상으로 옮기기만 하였기에 작품에 개성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아니, 개성이 묻어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품질의 전통(Tradition de la qualité)'이라 불리는 그들의 작품에서 배우들은 완벽히 준비된 세트장에서 고상하고 문학적인 대사를 읊었다. 영화의 주인은 감독이 아니라 각본가였다.


이들에 반기를 든 소수의 젊은 평론가들이 있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으로 대표되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은 기성 프랑스 영화를 열성적으로 비판했다. 그들에게 남이 쓴 각본을 바탕으로 통제된 세트장에서 촬영된 영화는 박제와 다름없었다. 당시의 주류 영화계에 불만을 품은 그들은 직접 영화를 만들기에 이른다. 조건은 단 하나, 자신의 색깔이 그대로 작품에 묻어날 것.


그들은 (말 그대로) 카메라를 손에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스토리보드도 대본도 없이 파리의 거리와 사람들을 찍었다. 핸드헬드로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며 생동감 넘치는 액션을 렌즈에 담았다. 배우의 애드리브를 권장하며, 심지어는 관객에게 말을 걸도록 했다. 그들의 영화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이 혁신을 우리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 New Wave)라 부른다.


누벨바그는 작가주의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작가주의의 등장 전 비평가들에게 영화란 제작사와 스튜디오 시스템이 만들어낸 공산품이었다. 영화는 각본의 질, 각색의 충실도, 촬영 기술의 수준, 배우의 스타성 등으로 평가되었다. 감독은 현장을 지휘하는 관리자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으므로 그의 의도와 철학은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반면 카이에 뒤 시네마가 촉발한 작가주의 비평가들은 감독의 철학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들은 영화의 플롯, 미장센, 촬영 기법 등을 파헤쳐 감독의 특색을 찾는다. 그들은 감독의 개성, 스타일, 주제 의식 등이 작품 세계에 걸쳐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최고로 쳤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는 말한다.


감독은 평생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만 만든다.
그는 그걸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반복할 뿐이다.


image.png 히치콕의 현기증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천대받던 상업 영화 속에서 예술을 발굴했다는 점이다. 작가주의 비평가들에 의하면 할리우드 B급 영화도 감독의 철학과 개성을 담아냈다면 명작이 될 수 있다. 작가주의 이전 알프레드 히치콕은 그저 그런 '양산형' 감독으로 취급받았다. 평단은 그의 기술적 역량은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가 다루는 주제(살인, 강박, 공포)를 폄하하여 그를 양산형 팝콘 무비 제작자 정도로 저평가하였다. 그러나 그의 열성적 팬이던 트뤼포는 수십 편이 넘는 그의 작품에서 독보적인 시각적 스타일과 주제 의식(죄의식, 관음증, 내밀한 욕망)등이 일관적으로 드러남을 파악했다. 트뤼포는 일주일에 걸친 그와의 심층 인터뷰를 영화로 제작했고, 히치콕은 단숨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작가주의는 영화를 오락에서 예술(fine art)로 격상시켰다.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를 위시한 작가주의 비평가들은 감독이 카메라를 만년필처럼 사용해 작품을 써 내린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영화도 문학이나 회화처럼 작가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예술의 형태임이 받아들여졌다. 영화의 미적 요소, 즉 미장센 역시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되었다. 누벨바그와 작가주의의 물결 이후 영화는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예술로 변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