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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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금지된 사혼식.
영혼의 존재성에 관한 논쟁은 수천 년을 해묵어 왔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정신이 그 존재를 육체에 빚지지 않음을, 즉 영혼이 존재함을 주장한다. 반면 영국의 철학자 길버트 라일은 "영혼과 육체가 별개라면 인간은 귀신이 조종하는 기계(Ghost in the machine)인가?" 라며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한다(영제 <Ghost in the Shell>은 이 문장의 오마주이다).
수많은 철학자, 과학자, 종교인, 비종교인들이 이 낡은 논쟁에 참여해 왔으나 본질적으로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하기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공각기동대』는 이 낡은 논쟁에 대담한 관점을 제시한다. 감독 오시이 마모루에 따르면 영육의 구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고스트'라는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고스트는 전뇌화된 인간에게서 관찰되며, 스캔을 통해 조사할 수 있다. 고스트를 복제하면 정보가 손실되며, 때문에 이는 전뇌 윤리 위반이다. 고스트는 해킹당한 자는 '자신을 잃는다'. 고스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고도로 발달된 작중의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는 그 기원과 정체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신 '인형사'의 입을 통해 영혼을 정의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용한지 역설한다.
네트워크의 복잡성에서 태어난 지적 존재인 인형사. 의체에 깃든 그는 자신에게 고스트가 <생겼다>고 주장하며, 이는 검증 결과 사실로 밝혀진다. 이는 언뜻 의식이란 인간을 구성하는 복잡성에서 창발한 부산물이라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형사가 그 자체로 의체를 조종하는 고스트가 <되었다>고 해석한다면 영혼이 육체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이원론적 관점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고스트가 티타늄 두개골에 깃든 영혼인지, 전뇌와 유기물 두뇌 사이의 전기적 상호작용의 부산물인지 우리는 알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오로지 고스트는 전뇌에 존재하며, 이를 해킹당한 자는 '자신을 잃는다'는 사실뿐. 영혼의 존재성과 상관없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과 레플리컨트(인조인간)를 구별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는 설정은 대단히 철학적이고도 현실적이다. 현실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의 인간다움을 시험하기 위해 자연어로 질문을 던진다.
1950년 앨런 튜링은 인간과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진 응답자 그룹에게 그들의 신원을 모르는 심문자가 텍스트로 질의해 인간인 쪽을 판별하지 못한다면 그 인공지능을 '지적'이라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모방 능력을 시험하는 이 테스트를 <이미테이션 게임>이라 명명한다. 후대에 들어서는 이를 <튜링 테스트>라 칭하며 이미지 인식, 1대 1 통화, 다자간 대화 등 현대 인공지능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공교롭게도 최근 '인간성의 첫 번째 보루'인 튜링 테스트가 함락되었다. 2025년 4월 GPT-4.5를 시작으로 최첨단 LLM들이 연달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단순 유능한 기계를 초월해 유머를 가지고, 눈치를 보며, 실수를 하는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hatGPT는 생각을 할까. 최신 사고형 모델들은 적어도 보기에는 인간의 사고를 흡사하게 흉내 낸다. 혹자는 인공지능의 '생각'이 그저 고도의 패턴 인식이라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 역시 경험에 기반한 연쇄적 패턴 인식이 아니었나. 인류가 생산한 거의 모든 유의미한 지식을 학습한 신경망에서 창의성이 창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인간을 복제한 육체에 뉴럴링크로 ChatGPT를 탑재한다면 이를 인간으로 인정해야 할까.
이 아리따운 여성은 Neuro-sama, LLM이 3D 아바타를 조종하는 버츄얼 유튜버다. 그녀를 보고 인형사를 떠올렸다면 우연이 아니다. 아바타를 인공지능으로 조종하는 이 버튜버는 의체를 조종하는 인형사와 놀랍도록 닮았다. 그녀는 여느 버튜버와 마찬가지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며 다른 스트리머와 합방도 진행한다. 다행히도 음성합성(TTS) 기술의 한계로 그녀가 인간이 아님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직까지는.
인류가 마침내 인간과 구별 불가능한 기계를 창조한다면 유물론과 이원론의 구분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배경은 2029년이다. 어쩌면 인간이 신의 권능을 넘보아 영혼마저 창조하게 될 시기가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힘을 이기지 못해 조각난 쿠사나기 소령의 의체처럼 신에 도전하는 오만함이 인류를 자멸로 이끌지는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