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한 과거의 나를 사랑해

『천년여우』를 보고.

by 영화보는 정씨
image.png 천년여우

★★★★

인생이라는 영화, 사랑이라는 맥거핀.


'도쿄의 마돈나'라 불리던 전설적 여배우 '후지와라 치요코'는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30년 전, 돌연 은막 뒤로 사라져 버린다. 그녀가 창립 멤버로 참여한 영화사 '은영'은 70주년을 맞아 감독 '타치바나 겐야'에게 그녀의 전기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긴다. 치요코의 열혈 팬인 타치바나는 그녀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를 건네주며 인터뷰를 요청한다. 수십 년 만의 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자신의 화려한 커리어를 회상한다.


파시즘과 제국주의로 칠갑한 20세기 초반의 일본, 정치보다는 잡지 속 왕자님에 더 관심이 많던 평범한 여학생 치요코는 어느 날 경찰에게 쫓기던 한 남자를 돕는다. 자신을 화가라 소개한 그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그림을 그리겠노라 하며, 지금은 만주에서 동료들이 싸우고 있으니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 날 그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경찰의 추격을 피해 열쇠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무렵 영화에 캐스팅을 받은 치요코는 그저 촬영지가 만주라는 이유로 덜컥 제안을 수락해 버린다. 이것을 시작으로 치요코는 눈부신 커리어 내내 열쇠의 주인을 찾아 헤메게 된다.


image.png 화가와 치요코

영화 속에서 치요코가 촬영한 작품의 장면들과 현실의 인물들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천 년의 저주>를 내린 요괴가 극 속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거듭 등장하며, 작품에서 치요코를 괴롭히는 악역은 현실에서 화가를 추적하는 형사와 같다. 급기야 인터뷰를 진행하는 타치바나가 조력자 역할로 출연하기까지 한다. 언뜻 난해한 구성이지만, 관객에게 비치는 극중극의 장면이 실제 영화가 아닌 노년의 치요코가 타치바나와 함께 회상하는 과거임을 이해하는 순간 살타래가 풀린다.


타치바나가 조연으로 등장하였던 것은 치요코의 열성 팬인 그가 인터뷰 중 그녀와 함께 몰입하며 영화의 장면을 재연했기 때문이다. 형사가 악역으로 등장하였던 것은 치요코가 영화 속 악역과 자신의 인생 속 악역을 겹쳐 보았던 탓이다. 노인이 된 자신을 투영한 요괴가 등장하였던 것은 그의 입을 빌려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 년 동안 사랑에 고통받을 것>이라는 저주는 사극부터 SF까지 천 년을 연기한 그녀의 커리어 내내 사랑을 찾아 헤멜 것임을 의미하였다. 끝내 화가를 다시 만나지 못했기에 그 열쇠는 진정 저주와도 같았다.


감독들은 종종 극을 진행하기 위해 맥거핀을 사용한다. 일견 중요해 보이던 소재가 극이 진행되며 점점 잊히며, 그 정체는 끝내 공개되지 않는다. 맥거핀의 정체가 무의미해진 후 남은 것은 영화에 몰입한 관객뿐이다. 『천년여우』 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가 그렇다. 평생을 그 주인을 찾아 헤매고, 잃어버리자 잠적해 버릴 정도로 치요코에게 중요한 물건이지만, 정작 그 열쇠가 무엇을 여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열쇠의 주인을 좇는 치요코의 여정에 함께하며 공감하고 몰입할 뿐이다.


image.png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

열쇠가 무엇을 여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듯, 치요코의 인생에서 화가의 지분은 점점 옅어진다. 기억 속 그의 얼굴은 점차 흐려지고, 끝내 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치요코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어릴 적 잠깐 만났을 뿐인 화가가 아니라 천년의 사랑을 좇던 자신이었다. 결국 화가의 존재는 그녀의 인생에서 맥거핀에 불과했다.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사랑이지만, 천 년의 사랑을 연기한 대배우의 인생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맥거핀과도 같은 화가의 존재였다. 그녀가 맡은 배역이 온통 일편단심의 여주인공이었던 것은 영화 같은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생과 같은 영화를 찍고 영화와 같은 인생을 살았던 치요코. 반평생 '절절한 사랑을 하는 나'라는 페르소나를 연기한 그녀는 행복했을까. 진실은 그녀만 알겠지만, 스크린 밖에서 관람한 그녀의 인생은 영화만큼이나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