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팬이 생겼다

『룩 백』를 보고.

by 영화보는 정씨
image.png 룩 백

★★★★

만화, 영화, 만화영화의 팬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부터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름 아이디어는 많았는데, 창작이 두려워 노트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영화 비평을 연재하며 용기가 생겼나 보다. 잠자고 있던 글감 두엇을 끄집어내 살을 붙여 소설로 만들었다. 작품을 완성하고도 내심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가 전에 알려준 링크를 타고 소설을 봤다며 연락을 해왔다. 내 글이 '느좋'이라며 자주 써달란다. 처음 DM을 받고서는 부끄러움과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에게도 팬이 있음을 알게 된 후지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룩 백>을 영화관에서 두 번, 단행본으로는 다섯 번을 봤다. 그런데 처음으로 창작물을 완성하고 <룩 백>을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룩 백>은 만화에 관한 만화, 창작에 대한 창작이다. 주인공 후지노와 쿄모토는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만나 함께 만화를 그리며 성장하던 그들은 정기 연재에 들어가기 직전,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갈라지게 된다.


어린 후지노를 이끈 것은 쿄모토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쿄모토는 항상 저만치 앞서 있었다.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지만, 끝내 그 실력에는 닿지 못했다. 재능의 차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그림을 포기해 버리지만 졸업식날 그녀의 집에 가보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연습량의 차이였음을 깨닫는다.


어린 쿄모토를 이끈 것은 후지노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림을 '잘' 그릴뿐인 자신과 다르게 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매주 창작하는 후지노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졸업장을 건네주러 온 후지노에게 그녀가 자신 때문에 만화를 포기했는지도 모르고 팬심을 고백한다. 그녀의 진심에 후지노는 다시 만화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성인이 된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길이 갈라진 후에도 그들은 서로의 등을 바라본다. 쿄모토는 등에 후지노가 싸인을 휘갈긴 겉옷을 방 문에 걸어 놓고 그림을 그린다. 후지노는 '후지노 쿄'라는 필명을 그대로 두고, 언제든 쿄모토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 둔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쿄모토는 후지노에게 묻는다, 왜 만화를 그리냐고. 러프를 그리고 선화를 따고 명암을 넣는 작업을 수 백 번 반복해 한 편을 완성해도 독자의 성에 차지 않으면 외면받는 일을 왜 놓지를 못하냐고. 뒤를 돌아보니 그 답이 있다. 열등감의 원천이자 그림을 포기하게 만든 원흉. 동시에 만화를 계속할 용기를 준 자신의 1호 팬. 그녀가 보고 있기에 후지노는 창작을 그만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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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Look Back


사실 '후지'노와 쿄'모토'는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내면이다. 후지노는 주변의 천재들에게 품었던 열등감, 쿄모토는 무명 시절을 지켜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룩 백』은 결국 자신이 창작을 계속하게 해 준 이들에 대한 작가의 헌사다. 올해 개봉 예정인 실사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작가가) 이것을 그리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작품'이라 평한 것은 그런 이유일테다.


내게도 팬이 생겼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창작을 계속할지는 모르겠다. 본업이 아니기에 천재들에게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전업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처음으로 내 글이 좋다고 해준 그의 DM을 떠올리지 않을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