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을 태우다』를 읽고.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의 비평과 해석을 쓴다. 이후 영화를 관람하고 원작을 먼저 읽었음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는 『버닝』리뷰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그녀'(이하 여자)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또 특별히 부족한 삶을 살지도 않는다. 만나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 의미 없음은 도리어 주인공에게 안식을 준다. 유일한 특이점이라면 마임을 한다는 것. 그녀는 귤을 먹는 시늉을 하며 '귤이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된다고 한다.
여자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애인인 '그'(이하 남자)는 마찬가지로 수상쩍다. 어째서인지 돈이 아주 많은 그는 독일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지만,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어느 날 여자와 함께 주인공의 집을 찾아와 식후에 대마를 권한다. 기억인지 환상인지에 취한 주인공에게 그는 돌연 취미로 헛간을 태운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세상에는 태워지기만을 기다리는—없어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헛간들이 있으며 자신의 역할은 그 운명을 집행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이 만드는데는 십오 분이면 충분하다.
사실 그가 찾아온 것도 근처의 헛간을 태우기 위한 사전 답사다. 이미 태울 헛간을 정해두었고, 곧 불을 지를 예정이라고 한다. 남자의 범행 예고를 들은 주인공은 집 주변의 헛간을 조사하고 매일같이 순회한다. 한 달을 지켜봤지만 불탄 헛간은 없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될 때까지 헛간은 그대로다. 주인공이 남자를 다시 만난 것은 12월이다. 주인공이 묻자 남자는 분명히 헛간을 태웠다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놓친 것이라고 답한다.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가 사라졌음을 일깨워준다. 그녀에게는 친구도 돈도 없었다. 주인공을 제외하면 그녀가 사라져도 슬퍼할 이는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주인공이 그녀를 기억하는 한 그녀는 태워지기만을 기다리는 헛간—없어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헛간을 정찰하느라 그녀를 잊은 사이 여자는 불탄 헛간처럼 정말로 사라져버린다.
남자가 여자를 죽였는지는 모른다. 남자가 헛간을 태웠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남자가 주인공 마음 속 여자의 형상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항상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을 정도로 적극적이던 주인공은 헛간에 집착하다 어느새 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그는 남자가 이야기를 꺼내서야 비로소 그녀의 부재를 인식한다. 그러나 존재를 인식에 의존하던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다.
결국 주인공은 마임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남자의 말에 현혹되어 그는 여자(헛간)가 없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럼으로써 그의 마음 속에는 헛간(여자)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는 아직도 집 주변의 헛간을 순회한다. 가끔 불타는 헛간의 형상을 떠올린다. 여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