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은 백수십 년 전 누군가가 지나가듯 한 말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이미 말해진 말 위에 재생산을 거듭하며 언어라는 이름의 사회적 시스템을 축조하였다. 그러니 진정한 독창성은 세상과의 단절과 다르지 않다. 의자를 코끼리라 부르는 남자가 소통을 희생함으로써 취한 독창성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글쓰기란 어쩌면 역사가 기워 붙인 언어라는 시스템 속에서 이미 말해진 단어와 문장을 적절히 배합하는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새 말은 그저 이미 말해진 말의 변형과 조합에 불과하다면 독창성이란 그 원본(들)에 비해 변화된 정도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문창과 스타일”이나 양산형 웹소설, 파스텔톤 감성 에세이처럼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 글은 그것이 그 원류에 비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이 역시 이미 말해진 말의 변형이다—처럼 유능한 작가들은 남의 글에서 밀렵해 제 것 같이 활용한다. 글이 막힐 때면 의식적이든 아니든 과거에 읽은 글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필요에 따라 글을 사냥해 칼질하고 요리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글이 완성된다.
연쇄적 변형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글은 원본과의 공통점을 찾기 불가능하다. 과학철학 크리에이터 마이클 스티븐스(a.k.a. Vsauce)는 일상적인 화두를 던지고는 그것을 과학과 철학으로 풀어낸다. 예컨데 릴스 중독이라는 주제에 뇌과학과 인류학을 곁들여 온라인에 자신의 유령을 기록하는 현대인류는 대륙을 횡단하며 발자취를 남긴 고대 인류와 다르지 않음을 논설하는 식이다. 흔한 주제로 시작해 알려진 이론으로 연결했지만 완성된 그의 강연은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할 작품이 된다.
무의식적 표절이 두려워 남의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한 영화 감독의 걱정도 일견 이해된다. 무의식이 참고한 작품이 간혹 표절이라는 모호한 잣대에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고자 한다. 내가 가진 문장의 금고를 채우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남의 글을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내 주장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