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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트 Feb 21. 2020

Silver Lining

포르투갈 바닷마을 '아제나스 두마르'에서 발견한 silver lining



어느 9월의 끝무렵, 나는 포르투갈의 작은 바닷마을 아제나스 두마르(Azenhas do Mar)로 향했다. 리스본의 근교에는 호카곶, 신트라 등 가볼만한 곳이 많은데 아제나스 두마르의 절벽마을만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은 시간과 교통수단의 한계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하하)


리스본에서 아제나스 두마르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기차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 한참을 이동해야만 했다. 버스는 대략 30분에 한 대꼴로 오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예쁜 러시아 아줌마가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알아들을 리가 없지. 영어로 되물었지만 영어를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우리는 위대한 파파고를 통해 간단한 대화들을 할 수 있었다. 아줌마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함께 탄 버스에서 우리는 인스타그램 맞팔도 하고 셀카도 함께 찍고 서로의 나라에 꼭 놀러 오라는 진심 어린(그때만큼은) 초대도 잊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아줌마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파파고의 위대한 번역 기술 덕분에 나는 단 20분 만에 러시아 아줌마 Yana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암담했던 아제나스 두마르의 날씨 상황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아제나스두마르는 그야말로 최악의 날씨 상태였다. 바람은 너무 세차게 불어 입고 간 원피스가 미친 듯이 펄럭거렸고,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어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정오가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관광객은 물론 마을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절망한 나는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대충 셀카 몇 장을 찍고 마을을 조금 걸었다. 절벽 꼭대기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간이 카페와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감자칩과 함께 정갈하게 내어준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배를 채우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져 주인 언니가 추천해주는 포르투갈식 커피(?)도 한잔 주문했다. 커피 위에 생크림, 시나몬 스틱과 파우더, 민트 잎 하나가 예쁘게 올라간 달콤한 커피였다. 날씨 운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세찬 파도를 바라보며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도 의미 있는 추억이라 생각하며 다시 리스본으로 길을 나섰다. 


작고 예뻤던 절벽 위 카페. 주인 언니가 참 친절했다.


바람은 차갑고 사람은 없고 버스는 2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그냥 리스본 구경이나 더 할걸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투덜투덜하다가 문득 다시 뒤쪽 절벽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구름만 가득하던 하늘에 한줄기 햇빛이 보였다. 뭐지? 싶어서 조금 바라보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싹 사라지고 태양이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세찬 바람도 멈추고 맹렬히 몰아치던 파도도 예쁘게 잠잠해졌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가능한 건가? 난 정말 행운아다! 분명 사람이라고는 카페 주인과 카페에 앉아있던 한 커플뿐이었는데, 해가 뜨니 마을 사람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제나스 두마르에 방금 도착한 사람처럼 다시 그 예쁜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한참을 걸었다. 햇빛을 받아 빛이 나는 흰색 건물과 빨간 지붕들을 보지 못했더라면 참 억울할 뻔했다. 


나는 종종 알 수 없는 우울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럴 때면 부정적인 생각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조차 버겁다. 그 우울은 대개 길지 않아서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다. 하지만 얕고 긴 우울이 한 달까지 지속되면 이것이 나의 기본 상태이며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만연해진다. 이럴 때면 밖에 나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다 잠들곤 한다. 이렇게 외롭고 우울할 때에도 항상 한줄기 빛은 찾아온다. 나를 잘 아는 친구의 위로, 가족의 따뜻한 한마디, 직장 동료의 친절, 나의 아지트가 될 것만 같은 집 근처 카페, 침대에 누워서 보는 영화의 감동적인 대사…. 나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주었던 silver lining은 때론 묵직했고 때로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일 때도 있었다. 나의 우울이 길고 내 안에 큰 바람이 불 지언정 silver lining은 언젠가 찾아온다. 마치 기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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