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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트 Feb 27. 2020

산에 가고 싶다

나는 왜 산이 좋아졌을까? 



어린 시절, 일요일이 되면 아빠는 내게 관악산에 함께 가자고 했다. 나에게 산은 따분하고 고리타분하며 그저 어른들의 것이었다. 몇 번 따라 나선적은 있지만 그다지 재밌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가 썩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중간에 포기해 내려오기 일쑤였다. 한 번은 집과 가까운 현충원 산책에 따라나섰다. 등산보다는 나을 것 같았던 현충원은 어린 내게 너무나도 광활했던 모양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산책 후 흑석시장에서 사 먹은 순댓국뿐이다. 


푸르른 여름산도 낙옆이 바삭한 가을산도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


그런 내가 등산을 시작하고 서울의 10개 산을 완등 했다. 수락산, 인왕산, 북악산, 청계산, 안산, 대모산(구룡산), 아차산(용마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까지. 시작은 회사 대리님과 함께 했던 수락산이다. 러닝 크루에서 등산도 한다며 대리님은 나를 주말 등산모임에 초대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하는 첫 등산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수락산은 돌도 많고 산세도(?) 험해서 결코 쉽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사람들 가방에서 나오는 간식들, 정상에 올라 마셨던 마치 아이스크림 같았던 얼음 막걸리, 꽤나 높이 올라왔음을 실감케 하는 정상의 풍경(주로 아파트..)은 등산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데 충분했다. 나는 동네 친구 다혜를 꼬셔 서울 등산 모임을 개설했다. 멤버는 다혜와 나 둘 뿐이었지만 여름날 푸르른 숲을, 가을날 예쁜 단풍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는 한 명으로 충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숲 속 브루잉도 미약하게나마 따라 해 봤다. 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산에 올라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산 속 브루잉.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도 중요하다


나는 왜 산이 좋아졌을까? 처음엔 정상에 올라 맛보는 성취감이 좋았다. 그다음은 산을 내려와 친구와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이 좋았다. 주말마다 무언가 멋진 활동을 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와 도란도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하며 오르는 것이 좋았다. 종종 멸치, 고추장을 놓고 막걸리를 팔거나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아저씨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곳에 간이 테이블이나 필요한 도구들을 숨겨놓는 것 같다. 흐흠) 매번 다른 산을 오르며 이 산은 이렇게 생겼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목표는 한라산 설산을 가는 것이라며 큰소리치는 것도 나름 즐긴 것 같다. 


산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야옹


아니다, 그냥 나이가 들었나 보다. 이제는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곳을 즐기게 된 것 같다. 이런저런 핑계로 한 달이 넘게 등산을 하지 못했는데, 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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