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배운 동요를 흥얼거리며, 긴 장화를 신고 늪지대를 헤쳐 나갔다. 아나콘다를 잡으러 가고 있었다.
언젠가 아마존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화면으로 본 아마존강은 푸르거나 흰빛을 띠었고, 때로 검기도 했는데, 북부 아마존의 물빛은 커피와 흡사할 정도로 어두웠다.그 강에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아나콘다와 5미터가 넘는 악어, 식인 물고기인 피라냐도 살았다.
남미 여행 중이던 2008년 1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영국 유학 중인 한국인을 만났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였는데, 놀랍게도 아마존강에서 라파스로 건너왔다고 했다. ‘동변상련’의 처지였던 우리는 서로 친해졌고 라파스 거리를 함께 걸었다. 나의 45일짜리 남미 일정에는 아마존강 체험이 없었다. 그런데 라파스에서 아마존으로 갈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밤새 고민이 되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가 알려 준 버스터미널로 갔다. 사전답사라고 되뇌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요한 짐을 챙겨 나왔다.
“아저씨! 이 버스, 루레나바께 가나요?”
“한 자리 남았어요. 빨리 타세요. 곧 출발합니다.”
하루에 한 대 있다는 버스, 내 몸은 벌써 버스에 올라타 있었다. 남은 자리는 맨 뒷자리 창가, 뒤쪽에 앉은 사람 대부분은 서양인 여행자였다. 이유 모를 불안이 엄습해 왔지만, 아마존강에 발을 담근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버스는 안데스산맥을 굽이굽이 돌아 넘었다. 구름은 버스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내 자리는 안데스 계곡 낭떠러지에서 대롱거렸다. 서양인 여행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악!”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도로는 비포장이었고 가드레일도 없었다. 불빛 조차 없어 별들이 유난히 반짝였지만 두려움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로 폭이 3미터 조금 넘는 이 길은 라파스 혹은 아마존행 차로 뒤엉켰다. 간밤에 잠을 설쳤는데도 생사의 갈림길이라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1박 2일, 버스에서 밤을 꼴딱 새우고 목적지인 ‘루레나바께’에 도착했다. 현지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 길이 매해 200명 이상 추락하는 죽음의 ‘융가스 도로’였다는 것을, 도착해서야 알았다.
‘루레나바께’에서 아마존으로 향하는 투어를 신청했다. 몇 가지 투어 중에 평소 보고 싶었던 ‘아나콘다 찾기’를 신청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허벅지까지 오는 구멍 난 장화를 신고 늪지대를 헤맸다. 우리 팀은 프랑스인, 독일인, 칠레인 등등 다국적이었고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누구에게든 내 구멍 난 장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원주민 가이드는 아나콘다가 있을 법한 곳을 뒤졌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가면서 아나콘다를 찾았다. 내가 아는 그것은 몸길이만도 10미터 남짓한데 저런 작은 나무 밑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 늪지대를 벗어 날 즈음, 가이드가 멋쩍은 얼굴로 아나콘다가 다 숨어서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악어를 잡아주겠다며 모터가 달린 작은 카누에 우리를 태웠다. 울창한 숲속 좁은 지류 사이로 유유히 달렸다. 물색을 보니 진짜 커피 향이 피어오를 것 같았다. 가다가 멈추면 분홍돌고래가 헤엄쳐 다녔다. 보통의 돌고래가 모두 바다에 살지만 분홍돌고래는 아마존강에 서식하는 희귀종 중에 하나였다. 나를 제외하고 일행 모두 물속에 뛰어들었다. ‘안돼! 이곳에 식인 물고기 피라냐도 있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들은 이미 돌고래와 수영하고 있었다.
보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고 귀여운 카푸친원숭이가 나무에 가득 매달려 우리를 구경했다. 새끼를 업은 어미 원숭이는 악수를 청했다. 평화로워 보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나 싶더니 보트가 물 한 가운데 멈췄다. 갑자기 손을 내밀어 뭔가를 보여줬다. 그가 약속한 악어였다. 그것도 예쁜 새끼 악어였다.
해가 지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모기떼가 어김없이 날아올랐다. 해가 뜨면 잠자고 있던 악어 떼도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찾아 방갈로 숙소 아래 줄지어 기다렸다. 비록 아나콘다는 찾지 못했지만 죽음의 길을 지나 만난 아마존강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