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화선 외전

이여덟_5

by 여더리

2022년 화선은 결심했다. 시인이 되기로.


19살 시인을 꿈꾼 이후로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고, 엄마 말마따나 아이도 이젠 성인이니 내 꿈을 좇아도 되지않나 하는.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기엔 자신이 자신 삶의 보호자이니 그래도 되지않나 하는. 잠깐의 검열을 거친 후 화선은 스스로 허락을 구했다. 화선은 자신의 삶이 증명되는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짖지않아도 방해꾼들이 없었으며, 죽은 듯 소리죽여있어도 여덟의 존재가 화선을 증명했다.


그리 어렵진 않았던 관리사무소의 일은 여덟을 키우며 병행할 만 했다. 하나 걸리는 것은 그 무화과나무. 지독하게 그늘지우는 그 잎과 향기없이 어지럽게하는 무화과 열매가. 마치 내겐 없던 사랑 비스무리한 것을 자꾸 연상시켜서. 실외기 위에 그늘을 가득 만드는 무화과나무 밑에 서있으면 해가 가리는 동시에 실외기바람에 뜨거웠다.


'그래. 이게 무화과 나무지. 사랑의 탈을 쓴 더운 바람.'


화선은 땀이 떨어져도 기어코 바람을 쐬고 들어갔다. 한여름 데워진 바람을 곧장 맞고도 사무실 안은 시원했다. 방금까지 있던 열기는 가짜라는 듯이. 화선이 그늘 속에서 얻은 것은 그저 가슴 근처에 땀띠 뿐이었다.


여덟이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종종 사무실을 찾아왔다. 유난히 땀이 많아 아가시절에도 여름에는 에어컨 없는 집에서 물수건으로 닦고 닦아도 열이 내리지않던. 그 여름에 학교가 끝나면 구시내를 굳이 와서는 사무실에 인사하고 가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두번이었지만, 화선은 못내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내 친구 연진이"


땀이 많아 겨드랑이 땀이 와이셔츠를 다 적셔도 부끄럽지 않은지, 지하 1층을 메우는 웃음소리로 들어와서는 크게 인사했다. 지하주차장에 있는 사무실이 꺼려지지도 않는지, 엄마가 세 평 방 안에 자리잡은 것이 창피하진 않은지. 여덟은 그냥 와르르 웃고 이따 집에서 보자며 인사했다. 고작 퇴근 1시간 남은 시점에도 여덟이 있는 집이, 땀냄새와 웃음이 가득한 집이 그렇게도 그리웠다. 그러면 아침에 무화과나무는 생각에서 지워졌다.


여덟이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를 가며, 달에 한 번 내려오자 화선은 견딜 수 없는 열기가 힘들었다. 화선의 안과 밖을 사로잡은 그 불씨는 8시간 앉아있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했고, 그맘 때 화선은 일을 그만두었다. 그것이 2022년 여름, 열기의 전조였다.


화선은 옛날 사람이었고 일을 그만두고 펜을 잡는 것이 설레기보다 두려웠다. 자꾸 확인받고 싶었고 포기한 것들을 상쇄시키는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버렸다. 자신은 나오지못한 대학을 다니는 여덟이 보기에 유치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야 했다. 다 커버린 여덟은 예전만큼 살갑지않았고, 논문이나 학문같은 어른스러운 주제로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작을 위한 어른스러운 대화는 사실 화선의 욕심이기도 했다. 여덟은 엄마가 시를 쓴다 정도만 알았고, 자꾸 논문타령을 하니 어색하게 보인 것이 사실이다. 화선이 혼자 어렵게 읽어본 논문에서는 결국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이라. 화선은 그 때 '자신의 상황'을 돌아봤다.


어려웠던 유년시절과 받지 못한 사랑에대한 갈망. 화선의 삶에는 큰 구멍이 있었다. 여덟과 시로는 채워지지않는 커다란 구멍. 아이와 주고받는 충만한 사랑은 다른 결의 풍족이었다. 가만히 있던 화선의 어린 시절은 어떤 부정적인 것들의 결집이었다. 처음 시를 쓰며 화선은 분명 꿈을 이룬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자했을 뿐인데 눈물이 죽죽나왔다. 꿈을 꾸고 이뤄가는 과정에 있음이 너무도 당연한데 화선은 스스로 자신을 부정했다. 마치 어린 날 '순한' 화선처럼.


처음 쓴 시는 영 엉망이었다. 여러 논문을 참고하며 멋져보이려 쓴 단어들로 한껏 꾸며져버려서 뭘 말하고 싶은지 어떤 '상황'으로 이루어져있는지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이후 여러 시를 썼지만 감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좌절의 연속이었다.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선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렸다. 커다란 구멍을 여지없이 내보였다.


익숙해지면 사랑하게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화선의 구멍을 드러낸 서툰 말들은 시가 되었고 아직 유려하지 못해도 화선의 맘에 드는 것들이었다. 화선은 솔직한 어구와 대담한 문단들을 이루어냈고, 곱씹을수록 화선이 가진 구멍이 사실은 상처였음을 알았다. 작은 생채기들은 치유되지 않는 큰 상처로 자라났고, 화선이 그것을 인식한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다. 자기연민이었다.


화선은 글을 쓴다는 명목 하에 술을 시작했다. 여덟은 몰랐겠지만 담배도 배웠다. 연신 술을 들이키다 큰 숨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면 속에 있는 무엇이 같이 동요하는 듯했다. 요절했다는 시인들이 이런 감정으로 스스로를 죽여갔겠구나 하는 어느정도의 공감도 가능했다. 글을 쓸수록 자신을 마주했고, 곪아 썩은 상처를 자꾸 덧내며 자극했다. 엄마에 대한 애증이 증오로 변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화선은 그 작았던 여덟을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달랐던 엄마는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오빠들 뒷바라지시키려 낳은 나를, 무화과나무보다도 못한 나를.


이것이 치유되기 위해선 근본적인 문제를 제거해야 한다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화선은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던 무화과나무를 없애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 길로 내항동, 그 옛집으로 향했다. 마주한 것은 사실 크지않았던 얇아져버린 무화과나무였다. 화선의 손목 두께만큼 자랐던 것은 이미 옛일이었다. 말라버린 화선의 손목에 비하는 가지들이 무화과 열매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더이상 개냄새도 나지않는 내항동은 고요했다. 화선은 철물점에서 빌려온 전기톱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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