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덟_6
구니는 제주도의 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보령에서, 내항동에서, 엄마로 불리며 살았다. 구니는 아홉남매의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다. 그 뿐이었다. 자신의 이름은 누구에게도 다정히 불린 기억이 없었고, 아이들의 가족관계 증명란에서나 쓰였을 뿐이다. 그것이 여덟번.
구니는 아무것도 없던 보령 내항에서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내항에는 류씨집안이 살았는데, 어린 구니를 가엾이 여긴 김씨 부인에 거둬졌다. 어리고 가엾어도 구니를 딸처럼 품어준 이는 없었다. 퇴로의 길에 할머니마저 잃은 구니는 천애고아와 다름없었다.
열 살 구니는 작은 조개를 캐기 시작했고, 곧 삼 사키로 되는 조개껍질을 들처매고는 보령경찰서가 있는 대천동까지 이동했다. 당시 시가지였던 대천동은 해산물을 파는 장이 3, 8일마다 섰다. 내항동에서 대천동은 약 40분. 조개를 가득 맨 아이가 걷기엔 쉽지않은 거리였다. 2키로 남짓을 걸어다니며 조개를 팔았지만, 어린 아이가 조개를 팔아도 생활력 강한 어른들은 깎기 바빴다.
그렇게 열 두살이 된 구니는 여느 날처럼 류씨의 아침을 차리고 조개를 캐러 준비하던 참이었다. 류씨 집안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알아채리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빨갱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익숙했다. 제주에서도 들었던 군인이란 단어가 다시 구니를 옥죄었다. 군인은 사람을 죽인다. 아버지가 당했듯이. 보령경찰서 근처는 녹색 얼룩 군복을 입은 사람이 즐비했다.
'제주에서 본 군인과 같은 사람일지 몰라.'
구니는 그들을 피해 숨기 바빴다. 혹시 아버지와 닮은 구니를 찾아내 죽이기라도 할 작정인지도 모르니.
전쟁 중에도 사랑은 싹튼다. 구니의 싹싹함을 좋게 본 류씨 아들이 구니를 맘에 둔 것이다. 구니의 생활력은 가히 그를 흡족하게하기 충분했고, 작은 조개 껍딱만한 집에서 방을 나누니 그도 그럴만 했다. 보령을 통해 서해안으로 나가는 군인들과 피난민들도 류씨의 눈에서 애정을 발견할 정도였으니, 이내 구니도 그를 인식하게 되었다.
구니 열다섯, 전쟁이 끝났다. 류씨는 징집이 끝나 집으로 돌아왔고 구니를 향한 구애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구니는 조개캐는 식모였다. 열다섯이 지기엔 무거운 짐들을 나르며. 류씨는 구니를 감히 도울 생각은 없었다. 그는 게을렀고 태만했으며 그저 바라만 볼 줄 아는 한량이었다. 구니가 청소를 할 적에도 류씨는 구니 뒷모습만 훑기 바빴다.
구니가 첫 생리를 시작하던 날. 김씨는 구니에게 흰 천들을 챙겨주며 이것이 필요할거라 말했다. 훗날 첫 아이를 낳을 때, 큰 피를 흘릴 때에도 유용하게 쓰인 흰 천들이었다. 구니가 열 여섯이 될 때까지 입맛만 다시던 류씨는 구니를 구워삶아 내항에 집을 하나 지었고, 작았던 집은 점차 화장실을 들이고 거실을 분리해 부엌을 두며 비로소 '집'이라 불릴 수 있는 모양새를 갖췄다.
그렇게 아이를 여덟을 낳았다. 구니는 어느덧 스물 일곱의 나이가 되었고, 조개를 캐고 밭을 매 굽어버린 손가락들과 태아들에게 생기를 빼앗긴 흰머리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류씨의 바람기와 그의 개들은 입에 담기도 싫은 것이었고 개똥냄새를 벗어나면 바다 비린내가 밀려왔다. 겨우 서른이 되어서는 넘쳐나는 아이들을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어 자꾸만 냄새나는 뻘로 향했다.
화선은 구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거센 남자아이들만 줄창 나오다가 만나버린 작은 아이. 품에 폭 안기는 부드러운 아이. 화선이 태어나던 해, 구니는 나무를 하나 심었다. 화선이 좋아하는 달콤한 것을 채워줄 달콤한 나무를 하나. 밥풀 하나도 단맛이 날 때까지 빨아먹는 화선이 떠오르는 작은 나무, 무화과 나무.
일곱아이를 학교보내고 화선과의 시간이 늘자 구니는 화선을 데리고 나무 아래 데려가 열매를 만져보게 하곤 했다. 통통한 열매는 화선의 팔만큼 말랑했다. 오빠들 몰래 간식을 더 먹여도 겨우 윗배나 볼록 나오던 화선이 안타까웠다. 줄곧 살이 찌지않아 키도 크지않는 아이를 보며, 구니는 영양분이 다 빠져 낳은 자식이라 그런건가 자책했다. 흰머리는 닮지 않았으면. 류씨처럼 드센 성격이나 갖고있길. 아이는 한 두어명만 갖길. 화선이 자랄수록 희망이라긴 안타까운 소원을 비는 구니였다.
무화과나무는 화선이었다. 퍼석한 몸통으로 달달한 열매를 맺어내는. 화선이 처음 뜻을 내보였을 때, 그것이 시인이었을 때. 구니는 화선이 겪을 퍼석한 세상에 너무 달달한 꿈을 꾸고있다 반대했다. 전쟁을 겪어보길 했는지, 아이를 가져보길 했는지. 아무것도 겪어보지 않은 아이가 나아갈 세상은 퍽 거칠었다. 구니가 간과한 것은, 엄마로 살았던 한 평생이 겪어보지 못한 달달한 꿈에 대한 것이었다.
화선은 다행히 시인의 꿈을 포기했고 은행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면 더 제 멋에 살테니 이렇게 기를 꺾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구니는 자신의 방식으로 화선을 사랑했다. 무화과나무를 화선이 자를 것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도 그 이유였다. 구니는 점차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고 모든 것을 잊어갔다.
허구니, 그것이 80년만에 닿은 구니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