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덟 외전

이여덟_7화

by 여더리

여덟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두손모아 듣던 어린 눈. 자기 전 엄마 품이 그새 그리워져 폭 안겨 자던 작은 몸. 집을 다 채우는 환한 웃음에 같이 터지는 눈물까지.


언젠가 여덟이 화선 뒤에서 사랑한다 말할 때, 화선과 여덟은 서류로 맺어진 관계보다 하늘이 뚝 내려준 선물이라 생각하는 때도 있었다. 내리받는 사랑에 점점 사랑을 주고받았고, 둘은 절친해져 서로가 주는 아픔까지 감내하는 사이가 되었다.


화선이 언젠가 명품을 카피한 가방을 사온 적이 있다. 누가 봐도 가짜 테가 분명한 가방. 엄마는 검소했지만 보는 눈은 높았다. 카피제품을 사고도 명품은 필요없다 말하는 모순적인 사람. 500이 넘는 가방은 생에 필요가 없다며 들고다니는 시장표 5만원 카피 가방.


여덟은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첫 월급으로 200만원짜리 명품가방을 사왔다. 비싼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내심 엄마가 기뻐할 생각에 숨 고르기도 어려울만큼 벅찼다. 처음 해보는 명품 선물이라 더스트백은 과감히 버리고는 거실 한 가운데에 가방을 두었다. 도어락 소리가 들렸고 여덟은 너무 설레어 차가워진 손끝을 입가에 두고 웃음짓고 있었다.


"뭐야."


여덟이 생각한 반응은 아니었다. 감격의 눈물까진 아니어도 감동의 포옹까진 기대했는데. 엄마는 신발을 벗다말고 거실에 있어서는 안될 물건이라도 있는듯이 차갑게 말했다.


여덟은 당황스러움에 왜인지 화가 불쑥 났다. 내가 못할 선물한 것도 아니고, 가짜가방버리고 진짜가방 들으라는건데. 가짜도 그 조악한거. 누가봐도 가짜인 명품가방 카피를 왜 들고 다니는데. 점점 마음 속에 화가 치솟았고, 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거 짝퉁인건 알고 드는거야?"


엄마는 아직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다 만 상태였고, 나를 쳐다보다가 어깨에 낀 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환불해."


엄마는 신발을 마저벗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오로지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만 기대했던 여덟은 자신이 왜이렇게 화를 내는지, 엄마를 왜 무안주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엄마가 싸늘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프게도 여덟이 버린 더스트백 안에 영수증과 보증서가 있었고, 가방은 환불할 수 없었다. 모처럼의 명품가방은 거실 화분 옆에 그냥 우뚝 있었다. 엄마 결혼할 때 해왔다는 낡디 낡은 소파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이상한 화분 사이에 200만원짜리 명품가방이 자리하게 된 이유다. 엄마와 여덟은 저녁을 같이했기에 한동안 서먹한 식사가 이어졌고, 그 '가방'은 대화에 절대 등장해서는 안되는 볼드모트같은 것이었다.


화선과 여덟의 냉전은 꽤 오래갔다. 전에도 물론 싸운 적이 많지만 사실은 대부분 여덟이 혼난 쪽이기 때문에 여덟이 굽혀들어가면 해결되곤 했다. 이번엔 달랐다. 여덟은 잘못한 것이 없었고 화선이 무엇에 화가 난건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여덟이 용기내 왜 명품가방이 싫으냐 물어본 그 날. 화선의 대답은 역시 상투적이었다. 무엇을 숨기는지 알 수 없게.


"엄마는 이런거보다 니가 건강한게 더 좋아. 너 비타민이나 하나 더 사먹어. 비타민 떨어졌더라."


그래도 엄마가 화난게 아니라는 사실이 여덟을 안심시켰다. 여전히 엄마의 냉정한 말투는 가슴에 박혀있었지만. 여전히 '이런거'라는 말이 불편하게 가슴에 남았지만.


어느 날은 엄마가 술주정하며 당신이 사랑받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 여덟에게 사랑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까지 했다. 여덟은 순간 동요할 뻔했다. 어쩌면 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잠시, 아주 잠시 스쳤다. 이내 여덟은 어이없어 웃어버렸지만.


"엄마가 왜 사랑을 못받아. 나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데. 그래도 뭐가 부족해?"


"응. 부족해. 나는 그럴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사랑받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해. 나는 화선씨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요."


장난스레 얼버무렸지만 여전히 엄마 표정은 곧 울어버릴 듯했다. 그래도 이악물고 우는 법이 없었지만.


엄마가 시를 쓰며 피폐해지는 나날이 지속됐고, 엄마의 사랑타령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정말로 사랑받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고 자신마저 외면하기 시작했다. 빼빼말라가면서도 술을 끊지 못했고 밤에도 시를 쓴다며 깨어있기를 하루이틀. 그럼에도 내 비타민이 떨어지면 곧장 사라며 재촉했다. 엄마의 이상행동과 할머니 케어에 지쳐가던 나는 미안하지만 엄마를 미워했다. 피곤했고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주삼지않고 술만 마셔대는 엄마를 보기 싫었다.


그렇게 무화과나무는 두동강이 나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할머니 케어를 나한테 전가해놓고 뭘 잘했다고. 엄마를 그렇게 두고 가는게 아니었는데. 하루에도 여러번 울었다. 할머니가 받은 충격은 둘째치더라도 엄마를 먼저 살폈어야 했는데. 엄마가 어디있을까. 두고간 시는 무슨 뜻일까. 유언이라면? 끔찍한 상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약 세달을, 꾸준히 날아오는 엄마의 핸드폰 요금 청구서로 엄마가 살아있음을 알았다. 15일에 혹시나 청구서가 안온다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무조건 받았다. 그것이 엄마 소식이라면? 차단된 메세지함을 계속 들어갔다. 엄마가 도움을 요청할수도 있으니. 뭐든 엄마가 얽혀있었다. 비슷한 검정 단발머리가 모두 엄마였고, 나를 부르는 모든 목소리가 엄마였다.


겨우 일 년. 어쩌면 일 년씩이나. 엄마는 돌아왔다. 항상 그래왔듯이 저녁을 같이 먹기 시작했고,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달라진 점은 저녁상에 매일 오르던 소주가 없어진 것. 엄마는 장장 일 년에 걸친 가출에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했고, 그저 하는 대화는 상투적인 대화.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


"오픈하자마자 진상이 왔어. 화장실이 급하다고 직원화장실 좀 쓰자더라구. 내쫒았지 뭐."


나는 엄마와 같이 있음에도 다음 날 엄마가 또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렇게 혼자 외줄타기를 하다가도 꽤 안정된 엄마를 보고는 안심하고. 이젠 웃기도 하는 엄마에게 할머니 뵈러 같이 가자고 말을 꺼냈다. 엄마는 예상외로 거절하지 않았고,


"그래. 요양원 직원들 먹을 것도 좀 사가자."


그동안 자신의 부재를 엄마로서 채워냈다.


'그 날' 이후로 치매가 심해서 요양원으로 옮긴 할머니를 뵈러 가는 날, 엄마는 처음으로 '그 가방'을 들었다. 구불한 길을 한참 가서야 도착한 낡은 요양원. 할머니는 허리를 움직일 수 없어 눈만 뜨고는 왔냐 읊조렸다. 엄마가 할머니 머리 맡에 가방을 조심히 내려놓고 말했다.


"여덟이가 사준거야 엄마. 명품이래."


엄마 목소리는 은근히 들떠있었다.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지금에서야.


'아'


엄마는 사랑을 받았다. 끝내 부정하던 것을 이제서야. 여덟의 사랑은 그동안 닿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화선이 사랑을 받는데 익숙지 않았던 터라 어떻게 받는지 몰랐던 것이다. 엄마는 오늘에서야 그간 받지 못한 사랑을 한번에 인정했다. 비로소 자신의 것이라, 비로소 자신을 향한 것이라.


일 년의 방황은 엄마가 사랑을 찾는 과정이었으리라. 나 혼자 추측하곤 한다. 무한했던 사랑을 알고 들켜버린 어린 마음을 수습하려 돌아왔으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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