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우리는 저마다의 상상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위인이 그려진 종이에 가치가 있다는 상상, 타인에게 인정 받아야만 된다는 상상, 한번의 실패가 인생 전체의 실패라는 상상....
이런 상상들은 모이고 모여 사회적 약속, 관념, 가치관을 형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이 상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상상'한다.
왜냐하면 지폐로 물건을 살 수 있고, 타인에게 인정 받으면 도파민이 쏟아져 나오고, 시험에서 떨어지면 주변으로 부터 인정 받지 못하고, 좌절감이 밀려오는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비행사에게 "양은 작은 떨기나무를 먹지?"라고 묻는다.
그렇다는 대답에 그는 "그럼 바오밥나무도 먹겠네!"라며 천진하게 되묻는다.
비행사는 바오밥나무는 코끼리 떼가 달려들어도 한 그루를 다 먹지 못할 만큼 거대한 나무라고 설명한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핵심을 찌른다. "바오밥나무도 커지기 전에는 작은 싹이었잖아."
비행사에게 바오밥나무는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나무'라는 현실로 존재한다. 그가 직접 봤거나, 책이나 뉴스를 통해 얻은 지식처럼 수많은 근거가 그 현실을 뒷받침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관점에서 바오밥나무는 보이지 않는 씨앗에서 시작해 행성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이처럼 같은 대상을 두고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우리는 똑같은 사물과 사건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떠올린다.
같은 건물을 봐도 건축가는 건물의 구조를 보고, 전기공학도는 배선 설계를 상상하며, 디자이너는 조형미를 평가한다.
농부에게 밀밭은 곧 다가올 수확의 기쁨이지만, 사막여우에게 밀밭은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의 상징이다.
이 모든 해석은 각자의 세계에서는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진실'들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관점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주장하며 갈등한다.
왕은 권위를, 허영심 많은 사람은 찬양을, 술꾼은 술을, 사업가는 소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지리학자는 꽃을 '덧 없는 것'이라며 가치없다고 말하는 반면, 어린왕자는 그 말을 듣고 '덧없는' 장미를 자신의 별에 홀로 남겨두고 온 것을 후회한다.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두 종류의 꽃을 만난다. 이름조차 궁금하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꽃'과 수천 송이가 피어있는 '장미꽃들'이다.
대수롭지 않은 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길을 묻고, 답을 듣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스쳐 가는 존재일 뿐이다.
반면, 장미꽃들은 어린 왕자를 깊은 슬픔에 빠뜨린다. 자신의 별에 있던 장미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믿음, 즉 자신의 '상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수없이 널린 장미들은 그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자신의 장미가 평범하고, 그런 장미를 가진 자신 또한 특별할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사막여우가 나타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또 다른 '진실'을 알려준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수많은 아이 중 하나이고, 여우 또한 어린 왕자에게 수많은 동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길들일' 때, 즉 관계를 맺고 시간을 나눌 때, 서로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 장미를 위해 네가 들인 시간이야."
함께한 시간이 없었기에,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은 꽃'은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남았다.
우리가 오랜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그 친구가 객관적으로 똑똑하고 친절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함께 쌓아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치는 이처럼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스쳐 가는 행인 1에 불과하지만, 직장에서는 대체 가능한 구성원일 수 있고, 가족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이 모든 것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 '나'에 대한 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가장 가치 없는 관점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좌절하고 우울해하며,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 단정 짓는다.
최근 유행했던 '원영적 사고'는 이러한 관점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는 태도다.
우리는 미래를 부정적으로 상상할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만큼, 긍정적으로 상상할 근거 또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상상'하는 능력 덕분에 신념과 가치관을 세우고, 약속과 계약을 통해 사회를 이룬다.
하지만 이 강력한 힘은 때로 편견과 왜곡된 가치관, 피해망상을 만들기도 한다.
상상이 만들어낸 수많은 '진실' 속에서, 무엇이 나를 병들게 하는 현실이고 무엇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현실인지를 분별하는 '지혜'.
그것이 바로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