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공부보다 악기」
이 책은 의대생임에도 바이올린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한 사람의 에세이이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바이올린을 떠올리고, 시험이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달려가는 사람. 전공생만큼의 실력은 아닐지라도,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의 이야기이다.
책은 저자의 소소한 일상과 바이올린에 대한 단상을 담백하게 엮어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꾸밈없는 진솔함이 오히려 내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취미’로서 열렬하게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코딩이 즐거워 ‘이걸 취미 겸 업으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졌고, 일로부터의 ‘도피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만의 취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체스, 독서, 영화 감상, 작곡, 악기 연주, 게임, 운동 등 수많은 문을 두드려 보았다.
물론 운동이나 독서처럼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어 꾸준히 하는 활동은 있지만, 어느 것 하나에 온전히 ‘몰입’하고 ‘열애’해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저자의 바이올린 예찬으로 가득한 일상적인 이야기임에도, 내게는 어떤 철학책보다 깊은 질문을 던졌다.
“너는 무엇을 즐기며 살아갈 것인가?” 라는.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단 하나의 생각이 떠나지 않은 적이 있는가? 나에게 그런 경험은 ‘가스 밸브를 잠갔나?’, ‘시험을 망치면 어떡하지?’, ‘문을 제대로 잠갔나?’처럼 대부분 걱정과 불안의 형태였다.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처럼 긍정적인 설렘이 온종일 이어진 기억은 아득하다. 어느새 긍정적인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감각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그녀의 세상은 온통 바이올린, 즉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으로 가득 차 있다. 해부학을 공부하며 바이올린을 켤 때의 손가락 근육 움직임을 떠올리고, 시험 기간에는 연습실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버틴다. 나는 이 감정을 표현할 가장 적절한 단어가 ‘열렬히 사랑한다’는 뜻의 열애(熱愛)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도 저자처럼 무언가를 이토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저자가 바이올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수록, 그 순수한 열정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나만의 열정을 되찾고 싶다는 의지가 다시 샘솟았다.
저자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가치’의 문제로 나의 생각을 이끌었다. 특히 돈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했다. 저자는 부모님의 기대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바이올린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부터 바이올린만 하면 밥을 굶을 수도 있는데 괜찮아?”라는 농담이 섞인 질문에, 온종일 바이올린만 연주할 수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보통의 시선으로는 무모한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통계는 개인 앞에 무력하다’는 말처럼, 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과 가치는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우리는 취미, 봉사, 종교, 사랑, 가족 등 다양한 가치를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유독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선자나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곤 한다.
나는 이런 현상이 많은 사람이 아직 자신을 뜨겁게 만드는 가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에, 가장 보편적이고 다른 가치로 환전하기 쉬운 ‘돈’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마치 자동차의 연료와 같다. 연료가 가득해도 목적지를 모른 채 직진만 한다면, 결국 길을 헤매며 더 많은 연료를 낭비하게 된다. 반면, 가야 할 길을 아는 사람은 최소한의 연료로도 충분히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면 무슨 소용일까?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아는 사람이야말로 적은 돈으로도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단순한 취미에 대한 부러움에서 시작된 생각은,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삶이 부러웠다. 의대생이라는 배경보다, 무언가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그 뜨거운 마음이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무언가를 ‘열애’할 수 있을까?
저자처럼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나만의 ‘바이올린’을 찾아나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