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삼경 정리하기 - 대학

주희, 「대학」

by ryu

최근 유학과 성리학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서 성리학의 기초인 사서삼경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삼경은 사서(대학,논어,맹자,중용)와 삼경(시경,서경,역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리학에서 기본이 되는 책 7권을 의미한다.

그 중 대학은 '학습'의 태도와 관련된 책으로, 사서삼경 중 가장 먼저 읽히도록 권장된다.

한자와 유교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내가 나름의 조사와 고찰을 통해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틀린 내용이 있다면 댓글 달아주면 감사할 것 같다.


개요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대학은 사물을 탐구하는 것(격물)이 어떻게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일(평천하)로 확장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도’는 길 도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인 동시에 밟아야 할 과정, 방법, 근본 등을 포함하는 것, 즉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뜻한다.

마땅히 해야할 도리가 있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서양의 칸트 주의와 비슷해 보인다.

칸트 또한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 해야하는 이유를 정언 명령, 즉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교는 이와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데, 유교는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도'를 따라야 하는 것은 주어진 의무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그렇고, 그것을 따르면 즐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공부(격물)를 해야하는 이유가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함, 즉 현대적으로 말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고, 명예를 위해서 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정으로 '도'를 따라야 하는 이유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법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부끄럼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삼강령

대학은 크게 실천해야할 3가지 강령(삼강령)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8가지 방법(팔조목)으로 구성된다.

그 중 삼강령을 먼저 소개하겠다.

1.명명덕(밝은 덕을 밝힌다)

=내 안에 본래 깃든 밝은 덕을 닦아 회복하는 것

이 책의 엮은이인 주희는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덕을 밝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덕을 밝히면 자연스럽게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의 경우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도덕의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이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라 하였다.

주희의 입장은 내 마음을 먼저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인 반면 정약용은 실천에 중심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2.신민(백성을 새롭게 한다)

=내가 밝아진 만큼 다른 사람들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

사실 원문은 친민(친할 친(親) +백성 민(民))이다.

하지만 주희는 친할 친(親)을 새로울 신(新)의 오타로 보고 신민으로 번역하였다.

즉 백성을 새롭게 해야할(가르쳐야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은 원문인 친민 또한 옳다고 볼 수 있으며,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또한 맞는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과거에는 지식인 계층과 백성 계층이 명확하게 나누어졌기에, 배운 사람이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신민 또한 맞는 말일 수 있지만, 현대에 와서 대학의 가르침을 실천하기에는 친민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3.지어지선(지극한 선에 머문다)

=이 모든 과정이 가장 적절하고 완벽한 도리에 머물게 하는 것

여기에서의 ‘선’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해야한다’와 같이 누가 봐도 옳다라고 여겨지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선이 있다.

반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실천해야할 선이 있다.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머물며,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머물고, 친구와 사귈 때는 신의에 머문다.

즉 ‘선’은 하나이지만,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은 달라진다.

경우의 수가 무한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들어서 이것이 ‘선’이다라고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행해야하는지가 이제 중용을 지키는 것이고, 이에 대한 것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에 더 자세히 나와있다.(중용 또한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그러면 여기서 '머무른다'는 의미는 정확히 무슨 뜻일까?

머무를 곳을 알고 난 뒤에야 일정한 방향이 있게 되고, 일정한 방향이 있고 난 뒤에야 차분해질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평안해 질 수 있고, 평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으며, 사려한 뒤에야 성취할 수 있다.

'머무른다'의 뜻은 ‘올바른 가치관’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올바른’이라는 것을 쓴 이유는, 내 가치관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과 일치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히틀러 처럼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은 옳다’라는 가치관은 당연히 '올바른' 가치관이 아니며, 이런 가치관을 가졌다고 해서 머무를 곳을 알게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치관은 단순히 머리만으로 ‘아 도덕적으로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이 삶이 내 안식처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이것을 나갔을 때(가치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내 기분이 안 좋아지며 거북함을 느껴야 비로소 ‘머무를 곳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올바른 가치관이 세워지면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방향을 알 수 있다.

이는 '대기업에 입사 해야겠다.', '돈 10억 모아야 겠다.'와 같은 목표와는 아예 다른 것이다.

머무른다는 것에는 목표가 없다.

그저 내가 머무르기로 한 곳에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머무르기로 결정한 곳을 빠져나가지만 않으면, 나는 무엇이 되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팔조목

사물이 탐구된 뒤에 앎에 이르게 된다. 앎에 이른 뒤에 의지가 성실하게 된다. 의지가 성실하게 된 뒤에 마음이 올바르게 된다. 마음이 올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여진다 ...(생략)

대학이 말하는 8단계의 수양 순서는 다음과 같다.

격물 : 사물을 탐구한다.

치지 : 앎을 지극히 한다.

성의 : 의지를 성실히 한다.

정심 : 마음을 올바로 한다.

수신 : 몸을 닦는다.

제가 :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

치국 : 나라를 다스린다.

평천하 :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이는 단계별로 격물 마스터 → 치지 마스터 →성의 마스터 → …이 아니라

내가 격물을 3만큼 하면 평천하도 노력해서 3만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전의 것을 100% 마스터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게 아니라, 그저 단계별로 이르는 순서일 뿐이다.

지행병진 : 앎과 행함은 두 발과 같아서 왼발이 한 걸음 나아가면 오른발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이와 같이 '아 나는 아직 3만큼 밖에 모르니까 10만큼 안 다음에 행동 해야겠어'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3만큼 아는데 내가 이걸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격물치지

격은 이른다는 것이고, 물은 사물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치지는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격물치지는 내눈 앞에 놓인 사물의 근본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서 그 끝에 이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마치 부모님을 만난다면 단순히 만나는 것을 넘어 ‘효’의 이치가 무엇인지 끝까지 파고들고, 이를 통해 효에 대한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의, 즉 의지가 성실해 진다고 말한다.

성의정심

'성의', 즉 의지를 성실히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의지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실하게 물어보고, 그대로 행한다는 의미이며, 이를 통해 '정심', 마음이 올바르게 된다.

격물치지가 성의까지 이어지는 것은 '악취를 싫어하는 것과 같고, 예쁜 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악취를 맡으면 ‘아 내가 악취를 맡았으니 코를 막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코를 막는게 아니고, 예쁜 색을 보고 ‘예쁜 색을 봤으니 좋아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좋아하는게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하게 알게 되면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행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기 때문에 의지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효', '도덕', '거짓말'과 같이 도덕과 관련된 형이상항적이고 철학적인 대상에 대한 공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치를 깨닫는 것을 격물치지라 한다.

예를들어 나무를 볼 때에도 인간은 나무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음에도 나무는 모든 것을 내어주며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도덕과 계절이 변함에도 그자리에 꿋꿋하게 존재하는 생명력을 보고, 물컵을 보면서도 무언가를 담아 남을 이롭게 한다는 쓰임의 이치와, 넘치게 따르면 안된다는 중용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는 억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격물치지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성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만물의 이치'라는 형이상학적인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이 '만물의 이치'란 뭘까?

유교에서는 이를 '인'이라 한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또 이렇게 단순히 한문장으로 표현하면 집착도 사랑이니 '인' 일까? 당연히 아니다.

범죄자를 사랑해서 범죄자를 놓아주는 것도 '인'일까? 당연히 아니다.

태평성대의 시대에서는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 '인'이지만,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는 백성에게 먹을 것을 배푸는 것이 '인'일 것이다.

이처럼 '인'은 단순히 몇 문장으로 말할 수가 없으며, 시대에 따라서도 핵심 가치가 달라진다.

이를 과거의 성인들은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해 섣부르게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언제 어떤 행위를 해야 옳은 것인지, 내가 머무는 자리가 정말 올바른 것인지 스스로 성찰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수신~평천하

이후 내용은 '인'이 '나'로부터 시작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 대해 담겨있다.

'인'이란 본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므로,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집,나라,세상까지 퍼지게 될 것이다.

'수신'은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을 통해 얻은 마음을 행동해야한다는 것이고, '제가'는 이것이 가장 가까운 공동체인 가족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국가와(치국) 세상(평천하)에 영향을 미치게된다는 뜻이다.

분명히 해야할 것은 이것은 어떠한 '지배'나 '통치'같은게 아닌, 자연스럽게 동심원을 그리듯이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인'의 실천과 현실

현실에서는 '인'을 실천한다고 해서 사회적 인정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투 당하거나, 착한척 한다고 뒷담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상기해야할 것은 영웅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인을 실천하고 덕을 실천하고 군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을 행하는 것이 내가 행복한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유학이 요구하는 한 가지 믿음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함없는 철칙이 있다. 반드시 충실함과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 군자의 지위를 얻고, 교만 방자하면 군자의 지위를 잃게 된다.

여기서의 충실의 충(忠)은 心+中이다. 주자는 ‘진기지위충’즉 자기 자신을 온전히 다하는 것이라 말했다. 내 안의 밝은 덕으로 인을 실청하며, 단 1%의 거짓이나 게으름도 없이 내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믿음은 인에 대한 믿음이다. ‘인’이야말로 인간이 머물러야 할 유일하고도 지극한 선이다. 라는 사실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다.

인을 굳건히 믿으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다하는 것이 군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내가 무엇이 되는지, 타인에게 무엇으로 비추어 보일지는 그저 군자의 결과일 뿐이며 목적이 아니다.

소인은 혼자 있을 때 좋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남을 보면 가리려 하지만, 군자는 홀로 있을 때도 그 마음이 속이지 않도록 삼간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인'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글 전체에서 몇번을 반복해서 강조했지만, '인'을 실천하는 이유는 내가 정치인이 되서 '평천하'를 이루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난세의 영웅이 되기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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