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좋아하는 독서 유튜버 너진똑의 카뮈에 관련된 영상을 봤다.
물론 영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지만, "비판적 사고를 해야 된다."라는 내용은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그런데 비판적 사고를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아는 것들을 나열해 봤다.
독서, 토론, 글쓰기...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났지만 그중 토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평소 친구와 쓸데 있든 없든 한 가지 주제로 논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정작 공식적으로 토론에 참여해 본 기억은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토론에 대해 알아보고자 디베이터라는 책을 골라 읽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니, 대부분이 스포츠로써의 토론을 알려주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스포츠로 즐기기보다는, 실제로 사람들과 토론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기에 그쪽으로 책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논제 : 무엇에 대해 토론할 것인가
논쟁을 벌일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에 관해 논쟁할지"일 것이다.
회사의 방향에 대한 논제이면 굉장히 중요한 논쟁일 것이고, 탕수육 소스를 부을지 말지 논쟁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매우 중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일 것이다.
여기서 "무엇에 관해 논쟁할지"가 바로 논제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논제가 한 문장이라도, 그 속에서 여러 개의 의견으로 나뉠 수 다는 것이다.
예시
논제 : 대학생은 학생으로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므로 공부를 매일 2시간 이상 해야 한다.
이 문장에는 사실 3가지의 요소들이 들어있다.
주제 분석 : 대학생은 학생이다.(사실) 대학생은 배워야 한다.(가치) 공부를 매일 2시간 이상 해야 한다 (판단)
그러므로 2^3=8가지의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1. 대학생은 학생 취급을 하면 안 되지만, 대학생은 무언가를 배워야 하므로 공부를 매일 2시간 이상 해야 한다. (사실은 비동의, 가치와 판단은 동의)
2. 대학생은 학생이지만, 학생이 꼭 무언가를 배울 필요는 없으므로 공부를 매일 2시간 이상 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동의, 가치, 판단은 비동의
3. 대학생은 학생이고, 학생이 꼭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공부를 매일 2시간 이상 할 필요는 없다. (사실, 가치는 동의, 판단은 비동의)
이렇게 한 논제더라도, 여러 가지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이걸 알지 못하고 논쟁을 벌이면, 상대방은 A라는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는데 자꾸 A를 설득하려고 하는 등 허수아비 때리기를 할 수 있다.
단어의 정의
이건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가끔 사람들끼리 단어의 정의가 잘못되어서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옳은 삶의 방식인가?"라는 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치자.
이때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 모두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사는 것이 옳은 삶의 방식이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라는 것이 무작정 놀기만 하겠다고 해석해 버리게 되면 둘 사이 간의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게 가장 시간낭비인 논쟁인데, 두 명의 의견은 같은데 서로 반대편에 서서 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논제를 오해의 여지없이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한 뒤에는, 항상 논제에 있어서 단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논쟁을 시작한다.
논증 :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논제에 대한 의견을 논증이라고 한다.
이것을 타인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주장이 필요하고, 그 주장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즉 논증 <- 주장 <- 근거로 서로 수식해 주는 관계인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논증 : 초콜릿은 판매 금지를 해야 한다.
주장 : 초콜릿은 몸에 나쁘다
근거 : 초콜릿에는 당이 너무 많은데, 당은 ~~ 한 나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여기까지는 대부분 잘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주장과 논증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초콜릿이 몸에 나쁘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주장이 참이라고 해서, 논증까지 참인 것은 아니다.
즉 이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장이 참이라면 논증이 참이라는 것이 납득이 되게 설명을 해야 한다.
“초콜릿은 당이 매우 많아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아이들로 하여금 당 중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주변 마트에서 초콜릿을 쉽게 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중독에 걸리게 할 확률을 높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콜릿을 판매 금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반론 :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반론은 상대의 논증을 깨뜨리는 것이다.
논증은 [주장-근거-주장과 논증의 연결고리 만들기] 이 3단계로 이루어졌는데, 반론은 이 3개의 연결고리를 부수기만 하면 된다.
근거가 옳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거나, 주장과 논증의 연결고리가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거나, 그 주장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겠다.
진실이 아님 : "당이 많아서 초콜릿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다크 초콜릿 같은 경우에는 당이 0g에 가깝습니다."
주장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님 : "초콜릿이 당이 많아서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판매 금지를 시켜야 될 정도의 사안은 아닙니다."와 같이 근거는 인정하더라도, 그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논증과 주장사이의 연결고리가 없다) 주장을 하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반대 측이라고 생각해 보고, 반대 측이 이겼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 뒤에 어떻게 이겼는지 이유를 작성하면 좋다고 책에서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쁜 토론 하는 법
토론을 할 때 지저분하게 이기는 방법들이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 이렇게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질 낮은 청중들은 이러한 지저분한 방법이 잘못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미국 정치인들의 토론도 이런 경우가 많다. (책에서 나온 예시도 힐러리와 트럼프의 토론이다.)
지금 생각나는 대표적인 토론으로는 MBC 100분 토론에서 게임중독에 관해 토론한 게 생각이 난다(대도서관이 나오는 그 토론 맞다). 일반인들은 논문을 보지 않아도 안다는 이상한 주장을 펼치면서 토론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상대를 안 하는 게 답이다. 이런 사람들은 2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첫째는 무식하거나, 둘째는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신념이나 자기 이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경우다.
혹여나 위에 MBC 토론처럼 피할 수 없는 경우 대처를 위해, 그리고 나 또한 더럽게 토론을 하지 않기 위해 4가지 방법을 소개하겠다.
1. 회피
주장을 직접 대응하지 않고 교묘하게 회피해서 맞서는 유형이다.
"화력발전이 환경에 해롭다고요? 당신은 그런데 왜 자동차를 몰고 다니시나요?"
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한다던지, "화력발전이 환경에 해롭다고요? 그건 풍차나 태양광 발전소도 마찬가지입니다."라는 식으로 다른 것도 그렇다는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런 행위는 현재 논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혹은 준비가 안되어 있으므로) 논제나 토론의 흐름을 바꾸려는 것이다.
최선의 대응은 본래의 논제에 대한 주장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2. 비틀기
상대의 주장을 과장시키거나 왜곡시켜서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이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사람들이다.
A : 시민 개개인에게는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B : 개인의 자유를 위해 공동체의 안정이 희생돼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전형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주장입니다.
처럼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 "개인의 자유를 위해 공동체의 안정이 희생돼야 한다."로 주장을 왜곡시켜서 반박하는 형태이다.
이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증명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논리에 안 맞는 주장을 한셈이 될 수 있다.
주로 나타나는 형태는 일반화시키거나 (‘총기 소유 권리’ -> ‘공동체의 안전이 희생’)
유사한 경우를 유추하거나(‘총이 괜찮다면 다른 무기도 합법화시키지 않을 이유는 뭐냐?’)
주장을 범주화(‘전형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주장’)과 같이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는 즉각적으로 왜곡된 부분을 지적하고 본래의 주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3. 말싸움꾼
반박만 하고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실 토론에서 만나면 핵심 주장이 없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유형은 현실에서 많이 보인다.
어떠한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에 대해 논의하는데, 계속 단점만 드러내며 반박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처 방법으로는 “그래서 당신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요?”와 같이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주장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라고 한다.
4. 거짓말쟁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거짓으로 지어내는 사람들이다. 이 경우 그냥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청중들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인신공격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틀렸는지 정확히 짚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2단계 대처법을 알려준다
1. 거짓말을 포괄적인 관점에 접목시키고, 발생하는 모순을 설명한다.
Ex) 이민자들이 ‘폭력적인’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이곳에서 자란 시민들보다 폭력 범죄 유죄 판결을 받는 비율이 이민자들이 더 적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2. 거짓말을 진시로 대체하고, 왜 후자가 현실에 더 가까운지 설명한다.
Ex)“진실을 이민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오히려 원래 이곳에서 살던 시민들보다 더 범죄를 적게 일으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은 대처하기가 정말 어렵다. 특히나 동시에 여러 개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 매우 힘들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A : 익명 출산을 제도화하는 것이 옳습니다.
B : 그것은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제도를 추진한 나라들은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아동의 기본권인 친부모를 알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는데 이 기본권은 보장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요?
영아 유기 조장 -> 비틀기
대부분 나라가 실패 -> 거짓말
알 권리가 침해 -> 논제 방향전환
이렇게 반박이 이루어진다면 바로잡기가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저 이기기 위한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대다수의 청중들은 이게 오류가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토론을 왜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토론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왜 토론(논쟁)을 해야 될까?
나는 서로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친한 사람들과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친할수록 더 논쟁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실재하는가 : 사적인 관계는 오해가 많을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단어의 정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오해는 잘 밝혀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가까운 사이니까 이해해 줘야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해를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여버린 오해들은 나중에 커져서 한 번에 터지게 된다. 이러한 오해들을 그때그때 바로잡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2. 중요한가 : 이 책에서는 논쟁이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으면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논쟁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대화하면 재미있는 것 같다. 이는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할 것 같다.
3. 구체적인가 : 사적인 논쟁에서는 삶이 너무 밀접하게 엮여 있어서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여러 개의 문제로 뻗어나갈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논제를 정확히 구체적으로 정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4. 목적이 상호 수용 가능한가 : 목적이 상대방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라던가, 고통을 주려고라던가, 자신의 불행을 알리기 위한 다던가 등 논쟁하는 목적이 불순하다면, 굳이 논쟁할 필요가 없고 상호 수용이 힘들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이 책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인 것 같다.
토론은 결국에 '나'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하는 도구이지, 나를 정당화 하는 수단이 아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며 더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걸 명심해야 한다.
마치며 : 하지만 토론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토론을 하다 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수 있는 힘도 커지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앉아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알았고 그 길을 내가 발견했다면, 그것을 걸어가는 것은 나의 말이 아닌, 나의 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