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는 시간들에 대하여

by 류서연

고3, 대학 입시를 끝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에 있는 해리포터 책을 우연히 보고 한동안 거의 미친 사람처럼 정독했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에서 너무 몰입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무섭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해리포터 읽을 생각에 행복했고 그 하루 눈 감기 전까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 외에는 해리포터를 읽는 것에만 모든 시간을 썼었다. 실제로 해리포터를 읽은 사람이라면 해리포터 시리즈가 얼마나 immersive한지 알 것이다.


그리고 문득,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던 너덜너덜한 해리포터 첫 책과 다르게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책을 읽고 있는데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게 나한테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지? 이 책을 읽고 내가 얻은 게 뭐지? 내 미래를 위해서 나는 뭘 준비하고 있지?' 등의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해리포터를 읽는데 쏟아부은 시간,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 유투브에서 찾아서 본 해리포터 analysis video들까지 합치면 정말 꽤나 긴 시간을 해리포터를 읽는데 시간을 보냈었고, 그 사실이 나를 갑자기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시간에 자격증이나 다른 것이라도 준비를 했어야 했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쯤, 책에서 해리 포터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잠시 덤블도어와 나누는 대화 내용이 나를 울렸다.


“Tell me one last thing,” said Harry. “Is this real? Or has this been happening inside my head?” Dumbledore beamed at him, and his voice sounded loud and strong in Harry’s ears even though the bright mist was descending again, obscuring his figure.

“Of course it is happening inside your head, Harry, but why on earth should that mean that it is not real?” - J.K. Rowling,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이 대사에 대한 해석은 다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JK Rowling이 이 책을 마지막까지 끝낸 독자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건넨 한마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What are you doing, reading Harry Potter? Do you have that much free time? Why not maximize your protfolio, you have to increase your revenue, you have to think about the ROI, face the real world, Magic isn't real, fantasy books are for kids!"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해리 포터를 읽는 내 모습이 잠시 멍청해 보였던 그 순간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들이 현실의 나를 바꿔놨는데 어떻게 그 시간들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J.K. Rowling도 본인이 쓴 책 몇 권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도 그 말의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쓸모없는 시간이라는 것은 없었다. 해리포터를 읽는 동안 행복했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지금도 책, 영화, 티비 시리즈 등을 정말 많이 본다. 그리고 그 쓸모없는 시간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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