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봤더라. 이제는 꽤 흔해진 말인데 우울할 땐 일단 청소를 하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무기력함에 빠져 우울하고 삶이 힘들어 아무도 만나기 싫을 때는 일단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게 효과가 좋다. 나는 딱히 무기력함과 우울함에 빠져있는 상태는 전혀 아니지만 그냥 만사가 귀찮아서 배달 음식으로만 저녁을 때우게 되는 주가 생기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 그냥 내가 전혀 열심히 살고 있지 않고 인간 사료나 먹으며 똥만 싸는 사람이 된 거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대단히 영양가 높은 삶을 살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꼭 지키고 싶은 건 바르고 꾸준하게 삶을 지켜나가는 것인데(진짜) 그래, 간단하게라도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이고 내가 만들어낸 이 식사에 감사함을 느끼자.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왜 혼자 평온하게 음식만 만들어 먹는데 힐링 영화인지 새삼 와닿는다. 난 인생은 결국 이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야망도 없고 욕심도 크지 않으며 정신없이 질주하거나 다양하게 뭐든지 해보며 살고 싶지가 않다. 물론 나 또한 삶을 갈망하고 또 누리고 싶지만 저건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걸 지난 인생의 날들을 통해 확실하게 통감했다. 그래서인지 내 일상을 유지하는 소소한 루틴들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나에게 내가 밥을 해 먹이는 것이다. 혼자서 편하게 살려면 살 수 있고 전부 돈으로 해결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이건 포기할 수 없다. 얼마 전에는 무생채를 만들어 반찬통에 옮겨 담는데 무를 무친 스텐볼에 남은 양념과 무를 설거지 차원에서 밥을 크게 한 공기 넣고 들기름을 뿌려 비볐다. 어렸을 때 큰 엄마나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비빔밥을 자주 먹나 싶었는데, 살림을 하다 보면 다 이런 거구나 생각도 들고 반찬거리를 하고 남은 것에 밥을 비비는 건 상당히 알뜰하고 야무진 행동인데 이 특유의 바이브가 바로 집밥의 중대요소라고 생각한다.
독립해서 나와서 산지 대략 15년 정도에 가까워졌는데 올해도 우리 엄마와 연락을 할 땐 밥은 뭐 해 먹었냐는 말을 듣는다. 솔직히 15년 들으면 이게 정말 지겹다. 일단 내가 먹은 것의 음식 구성을 엄마에게 설명하는 게 상당히 귀찮고, 이건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어도 하기 싫을 정도로 큰 이유 없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인데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단순히 뭐 먹었어?라고 묻는 말속에는 생각보다 내가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담겼고 나아가 내 건강과 정신 상태에 대한 궁금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생채를 만든 날에는 '밥을 비벼먹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길게 말했더니 엄마가 다른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혼자 먹는 집밥을 위해 밥을 짓고 찬을 만든다는 건 오롯이 내가 나를 위한 가장 본능적이며 직관적인 치유 행동에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분명 20대 때 내돈내산! 나는 술을 마시고 이건 나를 위함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왜 조금 더 정상적인 생각은 40대가 되어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