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개봉 영화들 몇 편
평소 영화를 볼 때 시대상이나 사회적 이슈보다는 개인적 서사에 더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현시대를 절묘하게 박제했고 그것을 우아한 방식으로 지적한 점이 좋았고 그래서 대단했다. PTA는 이미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제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듯 싶다.
이 작품에 대한 훌륭한 분석과 평가는 이미 시중에 많을 것이고 나 또한 대부분 그 의견에 동조한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되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압도적인 경험을 준 영화가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엔딩은 예상보다 싱겁게 느껴져서 영화가 조금만 더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2025년 가장 훌륭한 상업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알랭 기로디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이 정도 수위는 꽤 라이트 한 편이다. 시골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소수의 등장인물만으로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인상적인 점은 두 장르를 단순히 교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스펜스인지 코미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호한 컷들이 많다는 점 덕분에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주곤 한다.
프랑스식 유머와 밈에 더 밝았다면 더욱 풍부한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배치된 상징적 요소들만으로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긴장감은 제법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점 때문인지 다른 기로디의 영화들보다도 완성도 면에서 미감이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건 너무 골 때린 영화란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 유머의 한계는 어디인가.
솔직히 영화적으로 아주 새롭거나 강렬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단지 배경이 인도의 도시라는 점과 리얼리즘을 잘 살린 다큐멘터리적 연출이 새로운 몰입감을 줄 뿐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세상의 모든 작품이 굳이 새로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에, 그 작은 차이에서 오는 감흥을 온전히 느끼는 것도 작품을 대하는 좋은 태도일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본 작품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서사와 플롯, 그리고 감동적인 엔딩은 이전에 보았던 비슷한 방식의 영화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닮았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진 그 결정적인 차이는 아마 '음악의 힘'이었던 것 같다. 무심하게 흘러가던 내 감정을 단숨에 움켜쥔 건 바로 그 한 방의 음악이었다. 그것은 위로라는 순기능으로 작용해 내게 큰 잔상을 남겼다. 뻔한 표현일지 몰라도 조니 그린우드가 맡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스코어보다 이 영화의 엔딩곡이 훨씬 더 가슴 깊이 남았다. 때로는 수작이 명작을 가볍게 뛰어넘을 때가 있는데 작품 세계란 이렇기에 매력적인 것이고 자기만의 취향이란 게 생기는 것이다. 나는 2025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 영화에게 1위를 주었다.
때로는 주연 배우 한 명이 영화 전체를 책임져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그런 장악력을 가진 배우가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킬리언 머피라면 가능하다. 국내 개봉 전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고 주인공이 킬리언 머피라는 정보를 미리 접한 상태였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얼굴을 상상하며 서사에 몰입했고 당시 아일랜드의 연말 분위기와 가난한 노동자들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런데 영화를 처음 관람했을 때, 스크린 속 풍경이 내 상상과 너무나 똑같아 소름이 돋았다. 영화는 원작을 군더더기 없이 충실히 옮겨놓았고 혹여 부족할 수 있었던 지점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완벽히 메워준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이 작품의 이름을 올렸다. 이 영화와 원작 소설은 80년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그래서 많은 피해자를 낳은 실제 사건이기에 마음을 편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님에도 가장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한 점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 희망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희망에 대한 결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킬리언 머피는 자국에 대한 애정이 강한 거 같은데 이 영화의 주연을 그가 아니면 이 정도로 구현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국내 감독 중 누굴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바로 윤가은이다. 단편 <손님>과 <콩나물>까지 찾아볼 정도로 열성 팬인 내게 이번 신작은 정말 간절한 기다림이었다. 작품의 세계에서 인격이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영화라면 인물을 다루는 연출가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윤가은만큼 배려심 강한 연출가는 또 없을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디테일한 해석은 이미 많으니 굳이 말을 얹고 싶지는 않지만, 신인 배우 서수빈의 에너지만큼은 꼭 언급하고 싶다. <파수꾼>에서 배우 박정민을 처음 접했을 때만큼이나 큰 기대감을 주는 배우였다. 연기를 괴물처럼 잘하는 신인은 주기적으로 등장하지만, 서수빈처럼 맑고 기운찬 기질이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기에 특별하다. 이 배우 덕분에 영화가 훨씬 생기 있게 느껴졌다.
2025년 최고의 기대작, <부고니아>. 극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원작인 <지구를 지켜라>가 새삼 얼마나 대단한 명작이었나 하는 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만큼 영리하게 잘 만든 리메이크도 드물다는 확신이 들었다. 원작 특유의 키치한 에너지는 덜어냈을지언정, 그 자리에 남은 블랙 코미디와 냉소적인 비웃음은 오히려 한층 더 서늘하게 강화됐다.
원작이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오락적 재미를 쌓아가다 막바지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거대하게 터뜨리는 반전의 힘 때문일 것이다. 반면 <부고니아>는 연출적으로 그런 극적인 장치들을 과감히 거세해 버린다. 대신 그 자리에 채워진 것은 리메이크판만의 집요하고도 냉소적인 시선이다. 엔딩의 차이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참 지독한 감독이다. 대중은 아마 <랍스터>나 <킬링 디어> 시절의 스타일을 기대했겠지만, 그는 <가여운 것들>이나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에서 보여준 화법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결과물을 내놓았다. 스타일의 변화는 명확해 보이며, 앞으로도 겉으로는 마일드해 보일지언정 알맹이는 더 악독하고 냉소적인 작품들을 이어갈 것 같다. 나 이 사람 무섭다.. 인류애가 없나 봄.
원수의 자식을 돌봐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 같은 피해자임에도 서로 대립하는 아이러니. 영화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명처럼 되돌아오는 과거의 저주를 단계별로 매끄럽게 쌓아 올린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저주가 비단 고통으로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곧은 도덕적 신념 역시 원수의 자식을 배려하는 인본주의적 상황으로 되돌아오기에 관객은 선악의 저울질을 쉽게 허락받지 못한다. 원한과 복수라는 틀 안에서 감정의 교차를 풍부하게 보여주면서도 결국 '진정한 피해'란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선명한 비극으로 그려낸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연출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영화 너머 그의 인품 또한 깊게 느껴진다. 자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 위기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희망과 비판을 직설적으로 내꽂는 대범함이라니. 허상적인 작품 세계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직시해야만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진정한 '상남자'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파나히는 전작 <노 베어스>에서도 현실과 허구 사이의 가교를 참 영리하게 놓았더랬다.
사실 이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감독의 행보에 대한 의리와 격려에 가깝다고 본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훌륭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마치 송강호라는 대배우가 다른 수많은 명작이 아닌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것 처럼.
괴수 판타지를 독보적인 A급 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단 한 명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그가 마침내 장르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다.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결과물 또한 아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에 가깝다.
원작에 대한 재해석 역시 탁월하다. 단순히 비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변화의 이유를 하나하나 납득시킨다. 영화 말미, 빅터와 크리처가 나누는 감정의 굴곡을 보면 과연 그래서였구나 라는 탄식이 나온다.
델 토로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은 평범하지 않다. 대개 이런 장르물에서는 염세주의나 낙관주의 같은 1차원적 태도가 극의 효율을 높이는 법이고, 사실 그의 작품들 역시 그런 단순함이 미덕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델 토로는 결코 그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장르 특유의 원초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의 내면을 구태여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깊이 있게 담아낸다. 흥행을 위해 자극적인 요소를 배치할 법도 한데, 그는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그의 또 다른 개성이 드러날 예정인 <마이크로 결사대>도 매우 기대가 크다.
박찬욱의 영화들이 대부분 금기와 욕망을 등장 시키고 최근에는 파멸 엔딩에서도 구원 서사를 완성 시켰는데 이번엔 그의 말대로 대중의 입맛에 맞춘 블랙 코미디를 보여줬다. 무슨 블랙 코미디를 이렇게 건조하고 서늘하게 찍는지, 이러면 블랙 코미디인 줄 모르는 사람조차 많을 것이다.
영화는 포스터 일러스트의 표현처럼 분재에 대한 이야기다. 미니어처마냥 다듬어 크기를 작게 만들고 그 형태를 자기 입맛대로 바꿔버리는 취미. 고상해보이지만 실상 상당히 잔인한 통제로 이루어지는데, 나무나 화초를 자르고 걲고 비틀고 광합성까지 인위적으로 조절해서 취향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그 식물의 생명력을 필두로 한다. 제목의 <어쩔수가없다>는 이걸 비틀어 비웃는 반어법에 가까운데 굉장히 무표정한 비웃음이 아닐 수가 없다. 엔딩에서 이 블랙 코미디는 군더더기없이 완성되는데, 결국 그는 안락한 가정을 구축했으나 거짓된 진실을 이미 타인이 알고 있으면 그건 통제가 완성된 것이 아니며 결국 가장 지키려 했고 원했던 모양의 가정은 사실상 해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원했던 직장에서도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가 원했던 나무=제지에는 ‘인간’은 사라져간다. 거참 영화를 신통하게 찍는다. 블랙 코미디를 한 번 접어서 가리고 또 접고 펼쳐서 다른 모양을 만들더니 기어코 그걸 아주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론 양파껍질 벗기듯 한겹씩 벗겨야만 정체가 드러나는 작품인데 그렇다고 무슨 보물찾기하듯 숨은 서사와 상징 찾기 같은 건 일절 없다.(있는 거 같아도 매우 직관적이다.)
남들에게 저속한 욕과 몸개그 없이 차분한 말 한 마디로 사람 웃기게 해놓고 본인은 웃지 않고 평정심 유지하는 사람들을 천재라 생각하는데, 박찬욱의 영화 문법은 이런 방식으로 진화를 끝낸 거 같다. 이 영화 또한 그가 좋아하는 고전-클래식-스릴러의 근간이 느껴지지만 그걸 그대로 답습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영화로 정말 대중적 주목을 받으려고 한걸까? 그렇다면 박찬욱의 예술변태적 감각은 다음 작품에서도 기대할 수 밖에 없겠다. 영화 너무 잘 만드는 사람인데 영화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그게 먹힐 줄 알았다면 이 연출가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게 맞다.
캐스팅부터 예술이다. 어떤 유명 셰프가 ‘요리의 시작은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 부터 입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고 사실 이게 반 이상이라고 했었는데 박찬욱의 영화도 그렇다. 손예진이란 배우를 이렇게 쓴 건 신의 한 수다. 그 이미지와 페이스를 이렇게 활용하고 염혜란을 이렇게 배치한 건 아마 이 영화가 추후에 더 큰 인정을 받을 때 재평가될 요소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난 역시 박찬욱의 영화는 로맨스 요소가 없으면 특유의 그 파멸적인 맛이 안 느껴져서 아쉬운 정도. 분명 로맨스가 메인인 연출가는 아니긴 하지만 특장점은 거기에 있다고 느낀다.
한 인생의 점멸, 한 시대가 점멸하는 걸 묵묵히 보는 과정은 얼마나 슬픈일인가.. 살면서 본 영화중 이렇게 슬픈 영화는 본적이 없는 거 같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혹독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한 사람의 인생이란 것도 자연처럼 아름답고 혹독하다. '인생'이란 것을 관객으로서 멀리서 보게 된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당사자는 잘 모르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꺼져가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깐. 그럼에도 어떻게든 삶을 견디는 걸 본다는 건 어째서 동시에 아름다운 건지. 그냥 세상이란 게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밖에. 헤르만 헤세의 책 제목이 '삶을 즐기는 기쁨'이 아니라 '삶을 견디는 기쁨'인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로튼 토마토 평론가 총평 '어딘가 신화적인 인상마저 차지한다.' 라는 구절은 상당히 와닿는다.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이란 건 다 같은 하나이고 동시적이다. 마지막 시퀀스 글라이더에서 보는 하늘과 땅이 서로 뒤집히는 연출은 무척 영적이다. 하나의 깨달음과 그것에 대한 회한, 그리고 이런 순간마저도 혹독하지만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며 성찰할 부분을 주는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국내 영화인 <국제시장>이 아니라 이런 톤의 작품으로 인생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인데, 우리나라 정서와 시대적 환경으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듯. 뭐 국제시장도 좋은 영화다. 그 옛날, 영화 관람후 부산을 찾아갔을 때 국제 시장에서 짭퉁 옷들 구경하며 대한민국의 정취를 느끼고 시장가서 막회에 소주 먹었을 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는데 그야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난 곳은 부산이며 또 대한민국이니깐. 내가 뭐 아메리칸 워크 웨어를 즐겨 입어봐야 미국인 형님들 간지는 절대 나지 않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