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양, 후지이 카제, 페이브먼트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긴 음악인들이다.
음악을 예전보다 깊게 듣지는 않는다. 신보를 전부 체크한다거나 근래의 동향을 살펴보며 유행하거나 주목받는 음악을 체크하는 걸 올해는 하지 않았다. 개인적 사정- 가족의 건강 이슈가 무겁게 닥쳐오니까 일상에서 세세하게 신경 썼던 부분들은 생략하게 되었는데 그중 음악이 희생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음악을 안 듣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신보보다는 내 마음에 더 적절한 옛날 음악을 찾아 듣거나 그냥 단순히 땡기는 음악만 주워 들었다. 사실 이렇게만 들어도 되는 취미일 텐데, 내게 있어 새로운 음악에 대한 집착은 끝나버린 청춘의 대한 최후의 집착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올해에 발매된 기억에 남는 앨범들은 있었다. 단순히 신곡-싱글이야 많지만 풀랭스 앨범으로 기억에 남는 거라면 역시 두 장이다.
첫 번째 앨범은 후지이 카제의 'Prema' 앨범이다. 후지이 카제를 처음 좋아했던 시기엔 내가 이렇게 이런 가수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뭔가 너무 핵인싸 음악이기도 했고 가수 특유의 바이브나 모먼트가 옛날 추억의 비주얼계 뮤지션 요시키와 각트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웃기기도 했고. 그런데 카제의 음악은 요즘 활동하는 다른 일본 뮤지션들과 약간의 궤가 다른 느낌이 있는데, 탈 일본적인 게 조금은 느껴진달까. 어쩌다 홀려서 이런 핵인싸 대형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내한 공연도 다녀와서 그런지 새 앨범에 대한 궁금증이 좀 커졌었는데 마침 250의 프로듀싱이 거쳤다길래 더욱 기대했었다. 결과는 대만족. 앨범에서 생각보다 더 250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고 그것은 곧 90년대 한국-일본의 감각도 느껴졌다. 지난 앨범들보다 더욱 만족스럽고 취향에 잘 맞는 앨범이었다. Love Like This 라던가 You 같은 곡은 추억의 알앤비 가요의 감성도 있기도 했고 Forever Young의 경우는 현재의 후지이 카제니깐 할 수 있는 감성이랄까. 뉴트로 스타일을 떠나서 팝스타만 할 수 있는 감각의 음악인데 (가사의 감성이 특히) 일본의 젊은 팝스타의 느낌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두 번째 앨범은 전자양의 '합주와 생활' 앨범이다. 풀랭스 정규 4집 앨범이다. 활동한 지 25년 차에 나온 네 번째 정규 앨범.. 그냥 그 자체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처음 문라이즈에서 정규 앨범을 찍어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고 지금 4인 밴드가 된 과정도 전부 지켜본 팬의 입장에서 이번 앨범은 여러 부분에서 의외의 감탄과 역시-여전히 전자양이구나 하는 부분이 양립했다. 지난 앨범과 다르게 가사는 일상적인 느낌으로 돌아온 것이 차이점이겠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관록'이었다. 1번 트랙 합주를 듣는 순간 시원한 경쾌함과 개성 강한 보컬이 여전하다 느껴지면서 노랫말도 그런 편인데도 뭔가.. 이걸 설명할 길은 관록이란 단어뿐인 듯하다. 오래전 일본밴드 넘버 걸을 들었던 드라이빙한 기타팝+펑크도 느껴지고 그간의 음악들 중 사운드의 에너지는 가장 젊은 기질인데도 관록적이다. 난 이 앨범을 듣고 후지이 카제의 Forever Young을 들었을 때의 특유의 벅찬 감정을 비슷하게 느꼈다. 대체 이 감정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된 건지 궁금했고 마음 한켠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문득 떠올랐다. 그건 Pavement의 음악을 들었을 때 오래전 느꼈던 것이다.
I'm made of blue sky and rock and roll And I'm gonna live like this forever
나는 푸른 하늘과 록큰롤로 이루어져 있고 영원히 이렇게 살 것이다.
Pavement - In the Mouth a Desert 의 가사 한 구절인데 이 구절은 '파란 하늘처럼 하드록처럼 사랑해'로 번역된 소설에서도 인용되는 문장이다. 인디 음악과 젊은 청춘에 대한 찬가. 페이브먼트는 기본적으로 보여준 음악에서의 감성이 비교적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이며 쿨했기 때문에 저 구절의 뜨거움이 더 와닿는 것이다. 아 이 밴드는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을 무언가를 갖고 있는 밴드겠구나 싶었고 '영원히 이렇게 살 것이다'라는 말이 꽤 와닿았다.
39, 60 or whatever As long as we're here. We're forever young
39살이든 60살이든 상관없어 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우린 영원히 젊으니깐
Fujii Kaze - Forever Young
페이브먼트가 인디적인 고집과 빈티지한 청춘의 감성이라면 이 곡은 팝스타의 골져스한 감성으로 이끌어주는 느낌. 서로 성질과 결이 달라도 젊음을 위한 찬가는 늘 빛이 나는 법이다.
너와 내가 있는 한 기타와 북이 있는 한 영원한 밤이 올 때까지 모든 걸 태워
전자양 - 경주
결의를 보여주는 한 구절. 과거 '소음의 왕' EP에서도 이런 정서가 새로 생겼음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더욱 직관적이라 관록이 느껴지는 거 같다. 앞서 후지이 카제나 페이브먼트의 결의는 그 근원이 '젊음'에 있을 때 만들어진 느낌이 들고 희망적인 찬가라면 전자양의 경우는 ' 여기까지 달려왔고 이걸 우리가 증명한다' 라며 젊음들에게 답가를 하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커리어 내에서 가장 젊은 사운드로 무장해 돌아온 그들의 음악에서 이런 걸 느껴버렸다.
요즘 영포티 수난 시대이자 영포티 혐오 시대인데 마침 딱 영포티에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혹시 공개라도 하게 된다면 틀내나는 고약한 아저씨가 젊은 감성을 찬양한다며 돌팔매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 된다면 미리 사죄를 하는 바이며 정작 난 젊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또한 믿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음악들은 빛 바랠지언정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