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남녀관계는 꼭 명확하지는 않다

물론 동성관계도 마찬가지..일겁니다.

by Slow walker
새벽의 모든 All the Long Nights (2024) / 미야케 쇼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든 없든 그건 관심도 없지만, 다만 확실한 건 서로 도울 수는 있다는 거예요"


월경 증후군의 여자와 공황 장애가 있는 남자의 이야기. 그 둘이서 서로의 취약점을 하나씩 알게 되고 배려해 주면서 생기는 로맨스... 같은 영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서로 도우면서 치유를 하는 과정만을 보여준다. 난 미야케 쇼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서사는 크게 관심이 없고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의 '공기'가 느껴지는 순간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어째서인지 아침도 새벽도 아닌 해 뜰 때의 스산함과 동시에 상쾌한 그 느낌이 있다. 춥고 건조한 날씨에 밖에서 오래 걷다가 친구네 집에 들어갔을 때 따뜻하면서도 그 집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느껴질 때의 그 기분, 좋은 분위기까진 아니지만 그 따뜻한 실내 온도에 약간이나마 긴장이 누그러지는 그런 순간. 이런 찰나가 포착되는 연출들이 있는 영화다. 이 남녀가 서로 썸을 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6번 칸 Compartment Number 6 (2021/2023) / 유호 쿠오스마넨

그렇다면 남녀 사이에 순수하려면 '썸'이 없어야만 개운해지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새벽의 모든>의 담백함과는 또 다른 결로 단번에 떠오른 영화는 <6번 칸>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우연히 만나 애정을 나누고,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질투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시선은 뻔한 연애담에 머물지 않는다.

이 영화는 밀폐된 기차라는 공간 속에 모여든 각자의 사연, 그리고 그 허공을 떠도는 외로움들이 서로 표류하다가 아주 잠시 교류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분명 썸을 타고 있다. 다만 한 팔로는 각자의 팍팍한 현실을 붙든 채, 남은 한 팔만을 겨우 서로에게 뻗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 짧은 여정이 전부다. 결국 목적지보다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과 과정'이 더 중요해진 두 사람은,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몸 안에 차갑게 경직된 마음이 부드럽게 풀리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난데없이 계속 나오는 프렌치 신스팝 Voyage Voyage는 솔직히 이 두 사람의 정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곡인데, 난 마치 이 음악이 이 두 사람을 좀 놀리는 듯한 신의 멜로디라 생각했다.

Voyage, voyage 여행을 떠나요, 여행을 Plus loin que la nuit et le jour 밤과 낮보다 더 먼 곳으로 Voyage (voyage) 여행을 (여행을) Dans l'espace inouï de l'amour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랑의 공간 속으로 Voyage, voyage 여행을 떠나요


평소에 80년대 프렌치팝을 자주 찾아 듣기에 이 곡을 알고 있는 상태여서 더욱 웃겼달까.(내 멋대로의 해석이지만 거의 '얼레리 꼴레리'의 정서라고 느꼈다.) 상당히 농도 있는 유머와 아련한 로맨스 정서를 능청맞게, 몹시도 빡쌘 혹독한 겨울 배경으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엔딩 후, 그래서 둘이 잘 이어졌나? 그래서 저 둘은 만났냐? 이런 결론이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뒷 이야길 상상해 보면 그 둘은 다신 연락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 그 빡빡이? 귀여운 애였지 하고 추억이 남았을 것이고 아, 그 기차 여자애? 시발 내가 배까지 태워 줬는데 나한테 엉터리 핀란드어를 알려줬지 하면서 웃으며 추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엔딩은 최고의 로맨스 엔딩이었다. (Haista vittu)


버팔로 '66 Buffalo '66 (1998) / 빈센트 갈로

그렇다고 반드시 남녀는 연애를 하지 않고 스치는 인연으로서 서로 위로를 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외로운 사람 둘이 서로 기대며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이해하며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버팔로 '66의 이야기도 보는 사람에게 위로를 준다. 이보다 더 한 찐따는 없을 거 같은 전과자와 사회에서 소외 되었지만 순수한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의 구원 서사라니.. 시놉시스만 보면 작품에 대해 오해하기 딱 좋은데 실제로도 출소한 남자가 여자를 납치해 집으로 끌고 가며 둘은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둘이 연인이 되기로 한다. 이건 정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런 개막장 스토리를 마냥 욕할 수는 없게 된다. 사랑을 주는 법과 받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성장기가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객은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제발 둘이 행복하게 해 줘..."라는 간절함을 갖게 만든다. 위의 두 작품과는 다르게 이 남녀는 각자 구원을 받기 위해선 두 사람이 이어져야만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라일라의 서사는 깊게 다루진 않는데, 시대적-문화적 요소를 감안해 보면 그녀는 스트립 걸임이 확실하다. 자신에게 가볍게 대하는 온갖 남자들을 보다가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게 한 빌리를 봤을 때는 아마 바보 같지만 순수한 사람이라 충분히 생각했을 거 같다. 스토리에 녹아있지는 않지만 그녀가 빌리를 바라볼 때의 귀여워하는 표정들이 충분했기 때문에 서사를 깊게 다루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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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남녀관계를 '사귀거나 아니거나'의 이분법으로 나누려 하지만, 현실의 감정은 훨씬 더 복잡한 스펙트럼 위에 있다. 때로는 연인이 아니기에 구원받고, 때로는 연인이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관계들이 있다.

서로의 병증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새벽의 모든>, 찰나의 여정 속에서 낯선 온기를 나누고 쿨하게 돌아선 <6번 칸>, 그리고 서로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반드시 맞닿아야 했던 <버팔로 '66>까지.

우리는 흔히 관계에 이름을 붙이려 한다. 친구인지, 썸인지, 연인인지.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이 세 가지 풍경은 관계의 이름보다 중요한 건 '그 순간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주었는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때로는 이어지지 않아서, 때로는 잠시 스쳐 가서, 때로는 지독하게 엮여서 우리는 구원받는다. 세상의 모든 관계가 명확한 이름표를 달 필요는 없다. 그 모호한 경계 어딘가에서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삶에는 외로움이 동반되며 또 구원된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어색한 관계를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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