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자화상이 담긴 두 영화
대배우 야쿠쇼 코지의 방대한 이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을 꼽으라면 역시 1997년이다. 96년 <쉘 위 댄스>의 대흥행 이후, 그는 97년 한 해에만 <실락원>, <우나기>, <바운스>, <큐어>라는 네 편의 굵직한 주연작을 선보였다. 흔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우나기나 장르적 걸작 큐어만이 주로 회자되지만 당시 일본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읽어내기 위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우나기를 제외하고 실락원을 포함한 두 영화의 공통분모다.
<실락원>은 한국에서도 파격적인 외설성과 동반자살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정작 마주한 영화는 세간의 기대와 달리 무거울 정도로 정적이다. 반전이나 극적 장치 없이 시놉시스의 경로를 묵묵히 따라가는 이 영화를 두고 일부 관객은 '불륜 미화'라는 단편적인 감상으로 갈무리하곤 한다.
그러나 이 극을 지배하는 진정한 정서는 외설이 아닌 '허무'다. 야쿠쇼 코지는 사회적 시스템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중년 가장의 공허함을 대사 너머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깊은 눈빛으로 형상화한다. 그에게 자살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감옥에서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탐미적인 해방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역시 장르적 쾌감을 쫓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한 호러다. 슬래셔나 고어 같은 표면적 자극을 철저히 억제한 채 정적인 호흡을 유지한다. 이는 이 영화가 겨냥하는 지점이 육체적 공포가 아닌, 당시 일본인들이 공유하던 '내면적 불안'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호러와는 조금 다른 호흡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큐어>에서 다루는 공포의 기원은 일본의 1995년의 트라우마와 직결된다. 옴진리교 테러가 남긴 이유 없는 죽음에 대한 근원적 불안, 그리고 효고현 대지진 앞에 무력했던 도시의 질서에 대한 불신이다.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다카베 형사는 질서의 수호자이지만 동시에 시대에서 소외되어가는 중년의 표상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정체성이 붕괴된 그는, 결국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나 근원적인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기괴한 완성을 맞이한다.
묘하게도 두 영화 속 야쿠쇼 코지는 모두 사회적 시스템에서 밀려나 도태되어가는 중년 남성이며 그들이 온전한 자아를 찾게 되는 방식은 가장 어둡고 파멸적인 결말로 향해간다. 실락원이 허무주의의 끝에서 탐미적 자멸을 택했다면 큐어는 근원적 불안을 일상의 광기로 치환하며 질서의 파괴를 택한다.
90년대 말 일본 사회를 뒤덮었던 급진적이고도 어두운 그림자는 야쿠쇼 코지라는 거장의 얼굴을 통해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얻었다. 그의 1997년이 그토록 눈부시면서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는 2001년에 또 다른 명작 <유레카>에서도 열연하는데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얼굴의 연기는 97년의 두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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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락원의 원작 소설은 문학적으로 명작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로서의 실락원은 일본의 탐미주의 고전소설들이 연상 되었다.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일본에서 '탐미주의'가 주는 영향력이 없는데 이 영화는 그 마지막을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