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윌슨을 추모하며
언젠가 데이빗 보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우리가 좋아했던 뮤지션들이 점점 떠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어느 날 아침 특정 뮤지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뜨면 부고 소식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길 나눴다. 지난 달에는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뮤지션인 오지 오스본도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그렇게 몸에 좋지 않은 걸 다 했는데도 참 장수하시는구나 라고 종종 말해왔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부고 소식은 좀 더 다르게 다가온 점도 있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어딨겠냐만.
함께 음악을 듣던 친구들과는 데이빗 보위가 세상을 떠난 날에 우리는 각자 퇴근을 하고 펍에서 만나 함께 슬픔과 아쉬움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었지만 브라이언 윌슨이 떠난 지금은 서로 큰 이벤트 없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 우리는 각자 많은 죽음을 경험했고 또 우리의 나이도 평일 저녁 널널하게 만날 수 있는 에너지가 넘치는 나이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브라이언 윌슨은 내게 있어서 음악 이상으로 삶에 대한 무언가의 영감을 줬던,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 인물이기에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겨보려 한다.
그는 종종 '팝의 신'으로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곤 했다. 이견이 있겠지만 맞는 말이다. 팝 세계의 영역은 물리적으로 지구의 바다만큼 넓고 깊기 때문에.. 그런데 따지자면 조금 볼품없는 신이다. 어떤 특정 시기에 남들이 하지 못 했던 걸 했던 그가 이끌던 밴드 비치 보이스는 종종 풍비박산이 났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으며 형제,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는 멤버들이 병과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또 밴드내에서 권리 싸움으로 법정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팝의 신이 있는 밴드치고는 평가가 좋지 않은 앨범도 상당수이며 평가를 떠나 고정팬이 듣기에도 다소 평범하고 나이브한 앨범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그들의 히스토리에 명확하게 박제가 되어있고 당장 위키피디아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사실 팝 역사에 있어서 정말 흠잡을 것이 없는 음악만으로 디스코그래피를 채운 뮤지션은 또 얼마나 많나. 잠시나마 전성기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던 비틀즈만 해도 그들은 걸어온 발자취 자체가 전설이 되었고 작은 흠이라도 생기기 전에 사라진 밴드였다. 비치 보이스는 사람들이 Pet Sounds와 Smile이란 미완성작에 대해선 알고 있어도 그들의 70년대와 80년대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시절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투어를 돌았다. 시대가 변하고 유행하는 음악이 변해도 말이다.(그리고 그들도 그런 유행에 편승하고 싶어했다.)사실 명밴드가 아니었고 그들의 변화는 드라마틱하지 못 했다. 이름값만 거대해진 밴드는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 10대때 만든 곡들을 투어 셋리스트에 채워야만 했다. 사실 한 구간의 성공만 했던 밴드가 나이가 들어 투어를 할 때 하는 방식이 다들 이렇다.
요즘 한창 음악을 찾아듣는 취미가 생긴 젊은이들 입장에선 브라이언 윌슨과 비치 보이스 음악을 찾아 들을 이유가 없다. 단순히 리스너로서 박물관에서 역사 공부를 하듯이 찾는 게 아니라면. 나 또한 역사 공부를 하듯이 찾아 들었던 음악이었다. 그런데 그 세월도 20년이 넘으니깐 마치 그들의 전성기도 겪었던 것 같고, 그들의 황혼기 시기에는 피서객들이 떠나간 늦여름 해변의 처연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렸을 때 훌륭한 밴드들의 흠잡을 것 없는 명곡을 찾아 떠나며 발견하고 음반을 구매하는 여정들은 내게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방대한 여행이었고 그 행위에 만족했는데 요즘은 내가 음악을 듣는 방식과 받아들이는 감정 자체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나 또한 이런 명곡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황혼기에 이른 것이겠지.
Summer’s gone
I’m gonna sit and watch the waves
We laugh, we love, we cherish each day
Summer’s gone
Gone away
이들의 50주년 투어에 앞서 무척이나 오랜만에 발매한 정규앨범 'That's Why God Made the Radio'의 마지막 트랙 Summer Gone은 그들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듯한 감성을 수놓았다. 이 곡을 최근에 다시 찾아 듣고 느낀 점은 서핑뮤직 할때나 스튜디오 상자에서 Wall of Sound를 작업할 때나 다시 Smile을 작업할 때 그는 결국 한 구절의 좋은 멜로디를 그토록 원했던 것 같다. 라이브 공연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 뭐냐고 물었더니 객석에서 God Only Know라고 말하니까 본인은 이 곡을 가장 좋아한다며 비치 보이스의 곡과 본인의 솔로 작업물이 아닌 로넷츠의 'Be My Baby'를 부른 적이 있다.
The night we met I knew I needed you so
And if I had the chance I’d never let you go
So won’t you say you love me?
이건 단순한 팝 사운드의 유행가에 그치는 평범한 노랫말이다. 브라이언 윌슨이 이 곡을 좋아하고 부르는 걸 보면 나는 종종 인생의 힌트를 얻는 느낌이 든다. 삶에 있어 그늘이 많고 방황이 많았던 사람이 마지막까지도 본인이 하려는 음악은 태양빛을 머금은 멜로디이고 누구나 가장 꿈꾸며 얻고 싶어하는 단순한 행복이란 것이다. 그걸 위해 그는 얼마나 애써왔나. 누구는 지구의 환경을 이야기 하고, 테러를 걱정했으며, 내면의 모든 불협화음과 대화하며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하겠지만 그는 그냥 이런 달콤한 팝송을 지옥에 처박힌 본인의 마음속에서 붙잡아 끄집어낸다. 이제는 그의 음악적 멜로디나 편곡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다. 그의 실험적이었던 WOS나 당시 정서의 싸이키델릭을 팝에 융화시켜 하모니를 만드는 것들 또한 이젠 모두 낡은 것이다. 세상에 더 이상 대단히 필요하진 않은 물건을 만드는 장인의 음악들이랄까. 그렇지만 때때로 브라이언 윌슨과 전혀 상관없는 음악이거나 시대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음악에서 그를 느끼곤 한다. 이를테면 램프가 2년 전에 발표한 앨범 '이치야노페이소스'의 경우가 그렇다. 이 앨범을 듣고 바로 떠오른 생각이 ' 브라이언 윌슨이 이 앨범 들으면 굉장히 흐뭇해하겠네..' 였었다.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많은 파편들을 살면서 많이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종종 포켓 심포니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공감한다. 내게 있어 그의 음악은 주머니 속의 팝이자 3분의 기적. 3분이 지난 뒤 멜로디는 끝났는데 그 이상의 여운을 줬던, 그 멜로디는 자랑이라도 하듯 6분으로 늘려도 될 곡들도 많았는데 그는 그런 자랑을 하지 않았다. 또 본인 인생의 그늘을 무기로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팝은 그저 잠깐 도파민을 올리는 용도로만 소비해도 충분히 맡은 역할을 다 하는 것이 맞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법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 브라이언 윌슨이었다. 단순히 팝 멜로디 뿐만 아니라 팝과 같은 지점에 서 있는 휘발성이 강한 것들, 이런 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전부 해당이 된다. 세상 살면서 좋아하는 것이 참 많지만 음악은 특히 많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는데, 특정 뮤지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마다 이런 마음일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브라이언 윌슨만은 반드시 혼자서라도 추모하고 싶었다. 평온하게 쉬시길.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