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 겨우내 흔적

by Slow walker




W20. 아마 이걸 기억하려고 찍은 사진일 것이다. 낯선 곳에 주차하고 볼일 보고 다시 왔을 때 차를 10분간 찾은 적이 있었다. 사진첩에 쓸데없는 기록용이나 캡쳐본 같은 걸 남겨두는 걸 싫어해서 다 지우는 편인데 이 날따라 개넓은 주차장임에도 한큐에 찾았으므로 사진첩을 열어보질 않은 듯싶다. 덕분에 살아남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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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집에서 무언갈 해 먹는다면 양식 쪽이었으나 오히려 집에서 한식을 해 먹어야 진정한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짬뽕밥, 무생채, 겉절이, 오징어 숙회 (짬뽕은 한식이다 짜장면도 그렇고) 전부 괜찮았다. 내가 귀찮아서 그렇지 역시 한다면 하는구나.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반찬은 일단 미역줄기인데 이게 너무 심오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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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에 고양이 사진만 있어서 조금 다양하게 기록을 남겨보고자 겨우내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도 역시 고양이만 한 사진 찍기 뽕이 차오르는 순간은 없다. 고양이가 알아서 침대에 들어가 저러고 쉬고 있으면 어처구니가 없으니 결국 찍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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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매물로 소위 '개쩌는 것'을 샀는데, 무려 세계영화음악 전집 박스 세트 + 해설집이란 것이다. 택배로 받았는데 느낌으론 20kg 쌀포대보다 무거웠다. 바이닐이 30장인데 5장마다 두꺼운 아웃 케이스가 있다. 고전 클래식 명화들 위주의 음악이 빼곡히 기록된 음반이다. 물론 아직도 재생은 안 해봤지만 해설집의 사진집은 흘러간 세월에 비해 상당히 때깔이 좋았다. 그리고 옛날 양장본 특유의 고급스러움.. 5만 원대에 샀는데 내가 살면서 음반 쇼핑한 것 중에 베스트 5안에 들 정도의 초이스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바이닐을 수납할 공간이 부족하지만 ost만 꼽아두는 위치에 겨우 딱 맞게 들어갔다. 누군가의 '둘 곳이 없어서 못 산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호들갑이 꼴갑이네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내 이야기가 되었다.


8.jpg 내 생각에도 난 사진을 너무 무성의하고 영혼 없이 찍긴 하는 듯..

일상 루틴에서 빠지지 않는 게 산책이다. 특히 저녁 식사 후 1시간 정도 거리로 나와 탐방-산책하는 걸 좋아하지만 나이 들어버리니 한파 때는 산책은 무슨 염병이냐. 집에서 누워있었지만 왠지 풀무장 해서라도 나가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걷다가 궁금한 술집이 하나 보이길래 충동적으로 들어가 혼자 8만 원 치를 먹었다. 그러니깐 저녁도 먹고 돼지처럼 혼자 과음을 했다. 가게는 생각보다 큼지막하고 테이블도 널찍해서 연말 모임이나 데이트를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호방하게 1시간 만에 8만 원 치를 먹고 계산하니깐 사장님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물론 다시는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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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일대에 있는 노포 중국집의 짬뽕들은 다들 아주 기억에 남는 훌륭한 맛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이게 짬뽕이지' 하는 특유의 바이브는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넌 짜장이냐 짬뽕이냐? 야 나는 당연히 짬뽕이지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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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엔 도쿄에 갔는데 미친.. 사진첩에 술 먹은 사진뿐임. 그래도 모처럼 도쿄니깐 틈날 때마다 마셨다. 엔화가 헐값이라 이것저것 많이 먹고 마시고 돌아다녔는데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아마 서울 물가가 너무 높아진 것도 있어서 그런 것도 같고 대충 일곱 군데에서 술을 마셨다. 일본은 역시 맥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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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터지기 좀 전쯤일 텐데 드래곤 퀘스트에 빠지게 되었고 지나고 보니 나는 슬라임처돌이가 되어버렸다. 현재 슬라임 봉제인형 M사이즈 3개, LL사이즈 1개, 엔젤 슬라임 S사이즈 1개를 갖고 있고 픽셀 조명, 픽셀아트 조립품 3개, 슬라임 부채, 슬라임 우산, 슬라임 머그컵, 슬라임 유리컵, 슬라임 트럼프 카드, 슬라임 갓챠템 여러 가지와 차량용 키링 등등.. 내가 원래 굿즈를 이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데 그야말로 처돌이가 되었다. 그래서 루이다 바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중년 아재가 되어서야 궁극의 오타쿠가 된 느낌에 흡족했다. 유일하게 한 장소에서 사진을 3장 이상 찍은 곳이었다.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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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떠나자'

라는 구절 때문에 뭘 굳이 차 안에서 CD로 음악 듣겠다고 챙겨 나온 스미스 음반을 플레이어에 넣을 때 까진 좋았다. 근데 CD가 안 나옴. 그래서 저 앨범은 차 안에서 몇 달째 저러고 있는데, 우여곡절 끝에 빼내긴 했지만 쟤는 그냥 저곳이 원래 자리 같아서 내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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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친구 J형처럼 주말 서울 외각 대형 식물 카페 오픈런해서 워크맨도 듣고 감성 챙기고 몇 시간 놀고 싶었는데 배가 고파가.. 라떼 원샷 때리고 바로 평양 만두 먹으러 갔다. 파주까지 가기 귀찮아서 포레스트 아웃팅스로 갔는데 정작 만두 먹으러 파주까지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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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고양이들은 다 똑똑하긴 한 거 같다만, 그 지능이 안 좋은 쪽으로만 구현된다. 내가 어떨 때 힘든지 잘 파악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날 못 살게 구는 것이다. 잘만큼 잤잖아? 일단 일어나 봐. 하는 식으로 날 깨운다. 아 왜. 밥 없어? 밥 줄게 하고 꾸역꾸역 일어나 애들 밥 주러 가면 밥 많음. 그렇지만 애들이 이제 나이가 많아서 수년째 싫은 내색 없이 해달라는 데로 다 해주며 살고 있다. (솔직히 그러다 보니 요즘 더 싸가지들이 없어지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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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주말에 반드시 밖에 나가야만 그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날씨엔 정말 집에 있어도 좋다. 그게 바로 남서향의 매력이지. 겨울철 볕이 길게 들어오는 시간에 음악 틀어놓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책도 읽고 그러고 있으면 굳이 나가서 어 낭비하고 어 에너지 쓰고 그럴 필요 없다는 거야. 그래서 찍은 사진 한 장. 이 사진을 찍고 스스로 약간 감탄해서 여러 친구들에게 보내줬다.

" 이거 사진이 마치 70년대 프랑스 에로영화 감성으로 나왔어!"

실제로 프렌치 고전 에로틱 무비들의 촬영 기법에 대한 분석글을 써둔 게 있는데 다듬고 있다. 딱 이런 감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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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엔 신야가 방문했다. 얘는 우리 집에 올 때 빈손으로 온 적이 없기 때문에 미리 회 배달 시켜 세팅하고 선물로 줄 '명절 스팸세트'도 준비했다. 소주는 둘이서 약 4병 정도 마셨고 위스키 하이볼 두 잔 정도로 마무리했다. 이제는 밤새 놀 체력이 되질 않아서 일찍 헤어졌다. 이 사진은 배달의 민족 후기용 사진이다. 그래서 받아낸 것이 저 전복이었다. 나는 의리남답게 그 전복을 신야에게 니 무라하고 줬다. 이런 서윗함을 여자한테 보여 주라는데 진짜 죽탱이 날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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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중 "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일념으로 트로피를 전달해 줬다. 모시러 가고 모셔다 드렸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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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 세이코 공연 보러 가서 찍은 사진이 이런 거뿐이다. 차 갖고 가서 이걸 먹는데 소주를 못 먹었다.

" 요즘 술 그닥 안 먹어. 끽해봐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라고 말하고 다니니깐 다들 믿지 않던데 실제로 2025년은 그렇게 지냈다. 그래서 술 마실 타이밍의 약속날이 다가오면 조금 들뜨는 기분인데, 이게 바로 일반인들의 삶이었구나 느낀다. 돈도 절약되고 술도 더 맛있다. 다들 이렇게 잘 살고 있었던 거였다니.. 지금의 리듬이 딱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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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다양한 음반 포맷이 있다. 그중 음반 디자인이 미감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7" 바이닐 EP다. 공간 차지도 적고 컴팩트한 사이즈의 아날로그 음반. 좋아하는 곡들을 이런 포맷으로 갖고 있으면 더 만족도가 커진다. 물론 음덕으로서 대부분의 음반 포맷에 대한 애정이 각각 있긴 하다. 그중 가장 유니크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8cm CD 싱글이다. 일본에서만 본격적으로 발매했던 포맷이라 90년대 유명한 싱글 음반이 대부분 이 포맷으로 나왔다. 비효율적인 사이즈에 단가로 뽑아먹기 좋은 방식이 아니다 보니 골 때리게도 이거 팔아서 남나? 싶었다. 자기네들도 그걸 아는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좀 넘었을 뿐인데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렇지만 내가 90년대 덕후다 보니 이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좋아하는 음반들이 많아서 꽤 모았다. 오랜만에 정리 정돈해야겠다 싶어서 꺼내서 하나씩 나열하면서 보는데 진짜 알짜배기 잘 모은 컬렉션이었다. 요즘은 가격이 많이 올라서 사질 않고 있다. 일본에도 이제 소문이 나고 레트로붐이 터져서 비싸졌다. 물론 난 다 저렴하던 시절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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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 독서 스팟을 만들어놨고 그 자리를 즐기는데 여기에 앉아있으면 앞에서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스윽 쳐다보면 얘가 이렇게 쳐다보고 잠시 후 왱알왱알 거린다. 이유를 모르겠다. 이 자리에만 앉아있으면 계속 부담스럽게 쳐다보거나 왱알왱알 거리는데 한 번은 쭉 듣고 있었더니 30분 동안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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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빵에 막 개지랄해 놓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냥 소금빵이 소금빵이니깐 소금빵인데 왜 지랄을 해놓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이 무언갈 싫어한다고 선언할 때도 좀 조심해야 한다. 여기 소금빵은 변주가 많은 소금빵 중에서도 상당한 소울이 느껴졌다. 아! 이런 족보 없는 소금빵에 감동을 해버리다니. 소금빵을 준 사람에게 톡을 보냈다. " 여기 좀 치네." 그랬더니만 1시간 넘게 기다려서 산거라고 한다. 역시 지랄해 놓는 소금빵은 정이 안 감. 무슨 1시간을 기다리게 해. 넌 소금빵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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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회사 다니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분이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아침에 일어나며 살았는데 여전히 아침은 귀찮은 날이 많다. 회피적으로 아 몰랑하고 고양이나 주무르고 침대에서 데굴데굴 거리다가 한계에 임박했을 때서야 파워 기상한 뒤 차인표식 양치와 샤워를 하고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리고 출근한다. 특히 겨울은 일어나도 어둡기 때문에 더 귀찮은데, 이제는 서서히 봄이 다가오는지 일어나서 커튼을 열면 화창할 때가 있다.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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