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박제: 무시무종의 단면
한 가족의 막장 이야기를 꽃이 피고 지는 계절로 잘 비유했다. 이 기묘한 시간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아스라함 그 자체인데 찰나의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계절이라 그럴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반대되는 것과 대비를 시켰을 때 효과가 극대화 된다. 마찬가지로 찰나의 계절을 담는다는 건 영원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벚꽃의 상징은 모든 것의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다. 4월 이야기에선 그걸 곧 청춘으로 표현하는데 난 이 영화가 벚나무와 청춘에 관해 큰 부분을 일조했다고 본다.
아무리 불을 붙히려고 해도 바람이 불어 피우지 못 한 담배는 아무리 느리게 떨어지는 꽃잎 하나를 손으로 잡지 못 하는 것처럼. 안톤 체호프를 담으려는 나카하라의 슌의 시선.
현실과 꿈, 삶과 죽음이 전부 뒤엉킨 공간에서만 허락되는 극의 탐미적 정서만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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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국 마지막 한 잔을 마시려고 했다. 그 순간 날이 선 꽃잎이 잔에 떨어졌다. 그렇게 그는 그 잔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꽃잎은 돛을 세우고 바다 위에 유랑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바다에는 굵은 비가 내렸다.
찰나의 엉겹이 쌓이고 그걸 다시 억지로 떼어냈을 때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마치 벚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