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초의 기억은 언제일까. 내게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장면 중 최대한의 옛날은 초등학교 저학년쯤이다. 그때쯤부터 내 모습을 이질감 없이 장면의 가운데에 놓고 떠올려볼 수 있다. 유아기의 장면들도 조각조각 남아있긴 하지만 온전하진 않다. 짓궂은 남자아이의 장난에 커다랗고 솜이 가득 찬 무언가(요즘 같으면 빈백 소파라고 부를만한)에 깔려 죽을뻔한 유치원 때의 기억이라던가, 아빠가 읍내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를 언니와 나란히 앉아 보고 있던 기억이라던가. 몇 개의 장면이 남아있을 뿐이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 우리 집엔 티브이가 두 대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방에 한 대가 있었고, 언니와 같이 지낸 작은 방에 한 대가 더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대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기다란 뒤꽁무니를 달고 있었던 티브이는 자리를 잡고 볼만 하면 지지직, 하는 소음을 토하기 일쑤였다. 특히 만화영화를 많이 틀어주던 7번 채널이 가장 말썽이었는데, 언니와 나는 주인공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화면이 깨지는 만화영화를 아빠 몰래 숨어서 보곤 했다. 물론 그러다 들켜서 혼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꼭 요즘같이 습하고 더운 여름날엔 채널이 몇 개 안 나오는 티브이를 틀어놓고 소리만 흘려들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곤 했다. 천장에 딱히 재밌는 게 있을 리가 없지만 나는 그렇게 멍하니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즐겼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장은 형광등이 꺼져 있을 때 바라보아야 제맛이다. 형광등이 켜져 있으면 그 강렬한 불빛에 시선을 뺏겨 새삼스러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광등이 꺼져 있는 순간에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누런 천장. 죽은 형광등의 진물이 나오기라도 한 듯 이유를 알 수 없는 누런 얼룩이 가득했다. 얼룩의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궁금증을 가진 것은 지금의 나일 것이고, 그때의 어린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으리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에 대해선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티브이 소리를 뚫고 매미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말 그대로 찌른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매미 소리. 7일밖에 살지 못해 처절하게도 울어댄다는 흔한 감상을 알게 된 것은 아마 한참 더 자라고 난 다음일 것이다. 그렇게 티브이 소리와 그것을 뚫는 매미 소리, 감흥 없는 천장을 바라보다 잠이 들기라도 하면 콧구멍 속으로 매캐한 향이 알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름용 문의 방충망 사이로 여과 없이 들어오던 모기향 냄새였다. 어쩌면 항상 그 옆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빠 냄새였는지도. 그렇게 자고 일어난 낮잠은 에어컨 하나 없는 한여름의 수면 답지 않게 찐득함이 없었다. 실제로는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내 기억엔 그런 것 따위 남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지금 해외에 나가 살아도 말 안 하면 모를 걸.”
부모님의 구속이나 간섭 때문에 각자 얼마나 괴로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하던 말이었다. 특히 그런 주제는 막차 시간이 다 되어가는 늦은 술자리에서 나왔다. 나는 대학생이 된 뒤 한 번도 막차 시간이나 술집에 출입하는 문제에 대해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늘 혼자 살았던 내가 술을 마시던, 늦게까지 친구들과 떠들고 놀던, 엄마 아빠는 알 길이 없었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성인이 된 딸이 술은 마실 줄 아는지, 혹시나 도시에 나가 처음 맛보는 유흥들이 정신 못 차릴 만큼 달콤하진 않은지 한 번도 물은 적 없었다. 심지어 잦은 이사로 나의 주소가 몇 번이나 바뀔 때도, 학기가 시작하거나 시험을 치거나 방학이 시작되거나 할 때도, 등록금을 내거나 기숙사비를 내거나 생활비가 필요할 때도, 내 머릿속엔 그런 일들을 부모님께 알리거나 상의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없었다. 늘 일을 마치고 난 뒤 걱정마라는 식의 통보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엄마 아빠가 내게 별달리 묻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섭섭하다거나 슬프지도 않았다. 그것은 물론 딸에 대한 믿음 때문은 아니었다. 심지어 무관심 때문도 아니었다. 상의하거나 물어도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임을,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토록 부모님이나 고향과 친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땐 분명 조잘대는 막내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천진한 말을 뱉어 엄마 아빠의 당황을 보길 즐겼던 앙큼한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빠 등허리에 올라타거나 엄마에게 매달려 칭얼대곤 했던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의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어색할 정도로 무뚝뚝한 딸이 되어 버렸다. 엄마의 암 진단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오늘의 할 일’에 ‘엄마에게 전화 걸기’를 넣어놓고 연습하는 딸. 그나마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할 말을 머릿속에 정리한 뒤 전화를 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마 고향의 가난을 인식하고 나서부터였을까. 그 시골, 대나무 숲을 뒤로하고 앞으론 바다가 보이는 고향 집에서 가난이라는 의미 자체를 몰랐던 때는 없었던 거리낌이 그제야 생긴 것일까. 그 고향집을 떠올리거나 엄마, 아빠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것들을 거부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나는 유난히도 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향수가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계절은 반복되고 익숙한 여름이 찾아왔다. 여전히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기 위해 의식하고, 연달아 쉬는 휴일엔 반드시 집에 가는 것을 숙제처럼 실시하고 있던 여름날. 그 여름날의 어느 일상 속에 우연히도 매미 소리를 들었다. 퇴근길 갑자기 이어폰이라도 꽂은 듯이 귓가를 찔렀던 매미 소리. 화들짝 놀랐다가, 매미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컸나, 참 오랜만에 듣네, 하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매미 껍데기 갖고 놀곤 했었는데.
그땐 매미 껍데기가 아주 좋은 장난감이었다. 매미가 땅 속에서 올라와 나무줄기 어딘가에 벗어놓고 가는 껍데기는 힘 조절을 아주 잘해야 온전한 모양으로 떼어낼 수 있었다. 조금만 힘을 세게 주면 바스러질 만큼 연약했기 때문이다. 매미 껍데기는 찾아내는 재미부터가 있었다. 우리 집 마당엔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나 있어서 매미들이 껍데기를 벗어놓고 간 것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크고 모양이 훌륭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운이 조금 필요했다. 맘에 드는 모양의 껍데기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기쁨에 소리를 지르며 심혈을 기울여 떼어냈다. 그리곤 색종이로 접은 상자에 모아 애지중지 보관했다. 매미 껍데기가 5~6개쯤 모이면 상자가 가득 찼다. 여름 내내 그런 상자를 두세 개는 만들 수 있었다.
그 매미 껍데기가 징그러워져 만지기도 싫어졌던 때가 언제였나. 발견하기만 해도 몸에 소름이 돋았던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집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그때와 같은 때인가. 매미 소리가 들리고, 매미 껍데기가 떠오르고, 그때 엄마 아빠에게 갖고 가 자랑했던 종이 상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그 천장, 지지직 거리는 티브이 소리, 매캐한 모기향, 자고 일어났을 때 맡아졌던 된장찌개 냄새가 내게 왔다.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돌진해왔다. 그런 순간에, 어찌 제정신일 수 있겠냐만은 어쩔 수 없이 허무해졌다. 이토록 별 것 아닌 향수라니. 인생이란 참으로, 별 것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