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시가 멈추었어도]
한참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유난스러워 보이길 바라는 마음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그 문장을 바라봤다.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도움이 될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연의 시간을 확인하고, 곧바로 참여 신청을 했다. 강연 일자는 토요일 오후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대학교를 5학년 2학기째 다니고 있었다. 휴학했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7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냈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였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관형사의 의미를 고민해볼 새도 없이 바쁘게 수업과 고시 공부를 병행하며 지냈다. 대학 생활의 일부분을 바치다시피 하며 정성을 쏟았던 문학회 활동도 접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채 지냈다. 졸업을 하면 곧바로 사회에 던져지게 될 텐데, 학생과 사회인 사이의 경계에서 잠시 방황한다거나 쉬어간다거나, 무엇을 준비한다거나 할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마지막 학기인 지금과, 내년 시험 전까지의 몇 개월이 전부였다. 그 안에 시험에 합격해서 곧바로 사회인이 될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사기업에 취직할 만큼 쌓아둔 스펙도, 몇 번이고 도전할 용기도 없었던 나는 기필코 한 번에 합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이미 모든 것이 익숙했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수험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아침엔 나와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80퍼센트의 확률로 분명한 옆 방의 학생이 설정해놓은 알람 소리를 듣고 함께 일어났다. 고려시대 왕의 순서와 업적을 ‘우리나라를 빛낸 100명의 위인’ 노래에 맞춰 부른 녹음파일이었다. 방음이 하나도 되지 않는 원룸 벽을 넘어 들려오는 그 알람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발딱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누가 봐도 수험생처럼 보이는 몰골을 하고 가장 널찍하고 탁 트인 자리가 있는 학교 도서관 4층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샀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단 초콜릿 우유는 지금도 가끔 아침으로 먹곤 한다.
그렇게 이른 아침 도서관 자리를 잡아놓고 목표한 양만큼의 공부를 하며, 중간중간 수업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일에 비하면 체력적으로도 덜 힘들었으며, 감정적으로도 노동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문득 우울했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으며, 견딜 수 없다기보다 견디기 싫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왜일까, 원룸으로 돌아가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알 수 없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 어쩌면 내게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덜 힘들어 마땅한 지금이 대체 왜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몸이 편해지니 마음이 투정을 부리는 걸까. 언제나 여유가 생길 때 병이 찾아오듯이. 그런 걸까. 답을 찾을 수 없이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도서관 로비에서 발견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하는 강연 홍보물에 적힌 문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장도 되지 않는 짧은 구절. [지금 나의 시가 멈추었어도]. 강연 신청을 하고, 토요일 오후 시간을 내어 강연장에 들어서고, 몇 명 되지 않는 청중의 사이로 들어가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 시작되길 기다리는 순간까지 나는 그 구절에 홀려있었다. 강연자는 우리 대학교의 교수였다. 시집을 몇 권이나 낸 교수는 본인이 생각하는 시에 대해,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시를 낭독하는 교수의 목소리처럼 차분하게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을 듣는 내내 저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 간질간질하게 올라왔다. 그 감정은 점점 고조되어 긴장이 되기까지 했으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다리를 달달 떨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울먹거리며 교수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수험서만 보고 있으니까요...... 시가 안 써져요..... 저 이거 괜찮은 건가요?”
사실 질문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부끄러웠고, 스스로 내가 왜 이러나 싶었고, 누군가 쟤 왜 저렇게 진지해?라고 생각할까 봐 겁이 났고, 이상한 학생으로 보일까 봐 후회스럽기도 했다. 분명 강연을 듣는 동안 머릿속으로 질문을 정리할 때는 앞뒤로 다른 맥락이 잔뜩 존재했다.
저는 시를 쓰길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울고 싶을 때마다,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는 시간들이 있었고, 살기 위해 애써 시를 찾은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시를 쓰고 사람들과 나누고 나면 그 자체로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시를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험 생활을 하면서 시를 읽지 않게 됐고,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공허하고 초조합니다. 현실 때문에 꿈을 놓치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이럴 땐 어떡하면 좋을까요?
구구절절한 이런 맥락 대신 날 것의 울먹임을 덧붙인 채로 질문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나는 과연 내 질문이 전달됐을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한 건지 저 교수가 알아줄까, 하는 생각에 초조했다. 내가 교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질문을 하는 동안 다행히 교수는 나를 비웃지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으며,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마음인지 안다는 듯이. 하지만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신중히 단어를 골라가며 답변을 이어갔다. 질문 자체에 온 용기를 쥐어짰던 나는 맥이 풀린 채로 그 답변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그때 그 교수가 무슨 말로 나를 위로했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정말로 전혀, 단 한 문장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강연이 끝난 뒤 내가 누구보다 빨리, 서둘러 강연장을 빠져나갔던 기억만 선명하다. 아마도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강연이 끝나고도 곧바로 4층 열람실로 향했다. 강연 때문에 미뤄진 2시간어치의 공부를 서둘러 끝마쳤으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은 시간에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이르는 멜로디에 마음이 급해져 일어났다. 똑같이 하루 종일 수험서를 보았고, 시나 소설을 읽지 않았고, 물론 시를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처럼 우울하다거나 수험 공부 외에 꿈에 대한 초조함에 시달리지 않았다. 교수의 위로가 힘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 그 위로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강연장에서 질문을 하기 전에 잔뜩 다리를 떨어대던 긴장감, 생각만 해도 울컥했던 꿈에 대한 고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질문을 뱉었던 용기. 그것 자체가 나를 괜찮아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간신히 위로를 하나 건져냈고, 그것이 뭐가 그리 서러웠던지 시를 쓰겠다고 외치던 새파란 나를 견디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졌던 나로 인해 지금의 내가 종종 위로받기도 한다. 살다 보니 시가 멈추는 시간은 생각보다 잦고, 그 불가항력에 패배하는 때가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시가 멈추었어도, 그때의 내가 미리 울었기 때문에 괜찮다. 온 용기를 짜내어 손을 들었기 때문에 괜찮다. 그걸로 충분하고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