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재생 버튼 속 만남

by 주연

분명 그다지 친하지 않은 체육선생님께서 CD에 담아 멋쩍게 웃으며 건네주셨던 것 같은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행방이 묘연했다. 아마도 고향집에 있을 학창 시절 책상 어딘가 먼지를 머금고 꽂혀있으리라 결론지었다. 지금은 많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으로라도 남기지 않으면 없었던 듯 사라져 버릴 것이 무서워지는 애틋한 순간들부터, 사진으로 찍어버리고 머릿속에선 지워버리고 싶은 사실들, 사소하게는 버릇처럼 찍어 남기는 플레이팅 된 음식들까지. 하지만 내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사진을 찍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차라리 기억엔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사진으로만 확인이 가능한 까마득한 갓난아기 때의 사진은 앨범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살다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지는 순간은 아주 잊은 순간들보단 감정이나 냄새나 풍경의 조각이 어렴풋하게 남아서 그리워지는 시절들이다. 그 시절의 우리 가족에겐 사진이나 영상을 남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모양이다. 전혀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CD, 그 속에 담겨 있을 영상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가장 큰 사건들 중 하나였고, 그 후로 내 삶이 방향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토록 오래 잊고 있었다니.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에라도 반드시 찾아서 다시 확인하고 소중히 간직해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겨났다. 가장 먼저 스치듯 든 생각은 우리 가족이 남겨둔 기록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미련 없이 털어버렸다. 그럴 리가 없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런 걸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쉽게 접근해볼 수 있는 방법이 인터넷이었다. 검색어를 여러 번 바꾸어 검색했다. 그다지 본격적으로 찾은 것도 아닌데, 금방 내가 원하던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PD의 것으로 보이는 블로그에 남아있었다.



제목은 “주연이의 꿈길”. 오랜만에 보는, 그러나 지금 봐도 쑥스러운 제목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영상은 아직 재생되는 모양이었다. 얼른 이어폰을 찾아 끼고 영상을 틀었다. 그 영상을 보는 동안에는 부끄러움부터 낯간지러움, 신기함과 울컥함 등 온갖 맥락 없는 감정이 몰아쳐서 20분이 채 안 되는 영상을 몇 번이나 멈춰가며 봐야 했다. 심호흡도 하고 저 땐 저랬었나, 하며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그러다 네 번째쯤 영상을 멈췄을 땐 마음이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그곳에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입을 반쯤 벌린 채 빠른 손놀림으로 버섯을 솎는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익숙하다는 것을 이 영상을 보고서야 인식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살짝 들떴던 마음들이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리운 나의 과거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젊고 건강한 엄마가 그곳에 있었다. 검은 머리인 데다 날랜 손놀림의 엄마가 당연했던 그때의 나는 중학생이었다. 이 영상은 중학생이었던 나의 일상을 지역 MBC ‘희망 100%’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짧은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나의 꿈이란 당연히 글을 쓰는 것이었고, 꿈길이란 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올라가야 하는 오솔길을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으나, 글 쓰는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작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것은 중학생 때부터였다. 좋아하는 일이 꿈이 되는 순간이었다. 중학생 때의 나는 운이 좋게도 지금도 안부를 여쭙고 지내는 은사님의 권유로 각종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곧잘 타 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글을 쓰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쉬웠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글을 쓰면서도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자판 위를 방황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빈 종이를 채웠던 그때의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다. 카메라를 든 PD 앞에서도 쑥스러운 듯 더듬었던 그 말은 사실이었다. 글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으므로 자유로웠다.


그렇게 받은 상들이 쌓이고, 마침내는 전국 글짓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게 되자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역신문에서 우리 학교로 취재를 오는 것을 시작으로, 흔히 그 앞글자를 따서 이어 부르는 3대 신문사에서도 취재를 다녀갔고, 인터넷에서도 내 이야기를 기사로 찾아볼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몇 번이나 인터뷰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빨간 녹화 불빛이 들어오고 방송국 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 일들 덕분에 시골 학교가 내내 떠들썩했다. 신문사와 방송국은 우리 학교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어 했다. 사실 전국 글짓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렇게 큰 관심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학교 뒤로 산을 끼고 있는 전교생 31명의 분교에 다니는, 당시 떠들썩했던 사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시골 소녀라는 데 있었다. 폐교 위기에 처해있던 우리 학교에는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학교를 살리기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스스로를 희생하고 계셨던 선생님들께서 기뻐하셨고, 나 때문에 덩달아 카메라 앞에 서야 했던 친구들도 귀찮아하긴 했지만 들떠있었던 것 같다.

점점 카메라에 익숙해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살짝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상을 다시 봤을 때 확연히 알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는 프로그램이었고, 주위에서 모두 승낙하길 권유했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은 몇 주 동안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카메라를 들고 나와 함께했던 PD 아저씨와 꽤 긴 시간을 함께했다. 늘 야구 모자를 쓰고 약간은 피곤한 눈으로, 그러나 상냥하게 나에게 말을 붙였던 아저씨. 내가 말을 더듬거나 카메라를 의식해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면 몇 번이고 다시 찍어야 했지만 한 번도 타박한 적이 없었다. 그 아저씨와 함께 지역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글 쓰는 모습을 찍기도 하고, 학교에서 책을 읽는 모습, 꿈길이라 이름 붙인 오솔길을 친구와 걷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찍는 동안 어떤 사고가 있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때 나의 주된 감정은 어리둥절함이었던 것 같다. 그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신기했고, 실감이 잘 나지 않았으며,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쭐하기보다 주눅 들어 있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뭔가 해내고 있다는 사실과 주위의 응원들 때문에 용기를 냈다. 아마 지금의 나더러 똑같은 일들을 하라고 하면 더 겁을 먹고, 망설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덜덜 떨지도 모른다. 그때는 무엇이 주눅 든 나를 용감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까. 아마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이끈 그것은 꿈이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내 꿈을 이루어주리라는 기대로 들뜬 내 마음을 적어도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진한 사투리로 글 쓰고 책 읽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린 주연이 재생된다. 짐짓 진지한 눈빛이 보이고 나름대로 갖고 있었을 꿈에 대한 열정이 보인다. 자연이 좋은 글감이 된다며 오솔길을 걷고 꽃을 쓰다듬는다. 화면으로 보니 더 누추해서 조금 부끄러운 시골집도 배경이 됐다. 나만큼이나 어린 언니가 나오고, 엄마와 아빠가 등장한다. 버섯 농사를 짓고 있지만, 수입이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며 지내고 있다, 아이들 공부에는 지장이 없게 하고 싶다, 는 말들을 담담하게 뱉는 아빠. 자존심 센 아빠가 어떻게 저런 말을 다 했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보다 아빠의 치아에 눈길이 간다. 저 때는 그나마 치아가 성했구나. 무엇이 그리 분한 지 자면서 내내 치아를 갈아대는 바람에 지금은 거의 빠져버린 아빠의 입 속이 떠오른다. 한 번 쿵, 가라앉고 이번엔 빠르게 버섯을 골라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다. 우리 가족은 전부 머리숱이 많다. 아빠와 엄마, 언니와 나까지 숱이 많다는 말을 미용실 갈 때마다 듣곤 했다. 맞아, 엄마 머리숱은 원래 저렇게 많았지. 어느새 항암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엄마의 민머리가 익숙해진 것에 대해 생각한다. 저 땐 엄마의 저 모습이 익숙했다. 민머리의 엄마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익숙했던 것과 익숙해진 것에 대해 생각한다. 기억에서 잊혔던 순간들을 재생 버튼 속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것, 특히나 그 순간이 시간이 흐른 뒤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해진 경우라면 이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은 자꾸 가라앉는다. 내가 꿈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저 순간, 방송을 볼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무능력함을 고백한 아빠와 입을 반쯤 벌리고 버섯을 골라내고 있던 엄마를 몇 번이고 돌려봤다. 아빠, 그러게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어. 엄마, 나중에 암에 걸린다고. 버섯만 보지 말고 건강 좀 챙겨.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우리 가족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컴퓨터 한 대를 선물 받았다. 아빠와 엄마의 고백이 받아낸 선물이었다. 나는 이 방송을 두 번 다신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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