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홍시가 없는데 어떡하나

by 주연

엄마의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가족이 모두 서울대병원에 모였다. 접수 번호가 화면에 뜨기까지의 시간 동안 토할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것뿐이었다. 정신이 사납도록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빠는 번호 하나가 바뀔 때마다 우리 접수번호를 다시 물어댔고, 엄마는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식중독에 걸렸다는 뉴스를 보며 하이고, 우짜노, 저 어린것들이, 하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저 맞장구를 치며 자꾸만 아득해지는 마음을 외면하려 안간힘을 썼다. 이윽고 엄마의 이름이 불렸다.


“사람이 많아가지고, 다 들어가도 괜찮습니꺼?”


처음엔 너희끼리 들어가라, 사람이 너무 많다, 하던 아빠도 결국엔 간호사의 끄덕거림을 확인하곤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 섰다. 엄마와 언니, 아빠와 나. 가족 네 명이 다 함께 의사의 입만 바라봤다. 그 입을 통해 한 마디씩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내 귀엔 배경음악처럼 “아....”하는 아빠의 탄식이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내가 지금 저 맞은편에 서 있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엄마, 아빠, 언니, 어쩌면 나 자신을 포함하여, 그 순간의 표정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에서 나온 뒤 엄마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아빠는 벌게진 눈을 하고 말했다.


"의사가 말을 저리 해서 그렇지, 쉽게 말하자면 연명치료 인기라. 인정할 거는 해야 된다."


아빠의 흔들리는 눈빛은 딸들에게 하는 말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게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 이야기하면서도 당신 스스로 진정하려 애쓰는 기색이었다. 그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아빠 눈에 나는 아직도 부모가 의사 말을 설명해주어야 하는 어린 딸인 걸까.




분명 우리에겐 얼마간의 침묵이 필요했겠으나, 서울에서 고성까지의 길은 한숨을 돌려도 될 만큼 만만한 여정이 아니었다. 초행길인 탓에 아빠는 내비게이션과 연신 대화를 해댔고, 언니는 옆에서 덩달아 대화에 끼어들었다. 뒷좌석에 앉은 엄마와 나는 말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할 말을 열심히 찾고 있었으나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해야만 하는 말들,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았다. 흘끗 곁눈질을 하면, 엄마는 내가 잘 알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을 약간 내밀고, 갈색의 안경테보다 더 흐린 눈빛을 하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나 내가 “엄마”하고 부른다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은냐”라고 말할 그 표정이었다. 나는 끝내 가족이 다 같이 휴게소에 들러 국밥을 먹고, 고성에 도착할 때까지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엄마”하고 부르면 엄마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만 하니까. 그건 지금의 엄마에겐 너무 가혹할 것 같았다.




대학생이었을 때의 나는 분기마다 한번 집에 방문했다. 그다지 긴 시간 머무르진 않았으므로 ‘방문’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그저 다녀가는 방문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연휴에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더 선호했기 때문에 명절처럼 긴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내 방문조차 너무 뜸하다 싶으면 엄마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홍시 얼려놨다, 두 개.]


우리 집 마당엔 앵두나무 하나와 감나무 하나가 있었고, 앵두나무는 내가 어렸을 때 일찌감치 수명을 다했지만 감나무는 아직까지 잘 익은 감 몇 개를 가지에 매달곤 했다. 그 감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놔뒀다가 톡 따서 얼려 먹는 홍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엄마는 바로 그 홍시로 나를 꼬드겼던 것이다. 그 메시지를 받은 뒤엔 그러고 보니 집에 간 지 오래되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섬주섬 짐을 꾸려 집으로 내려갔다. 엄마는 도착한 날 보면 “홍시 물래?”하는 말부터 하곤 했다.


엄마가 냉동고에 얼려놓은 홍시는 두 개든 세 개든 전부 내 몫이었다. 방구석에서 휴대폰을 만지며 맛있게 홍시를 먹는 나를 엄마는 문지방 너머에서 가만 바라보고 있곤 했다. 그럴 때 엄마의 눈빛은 갈색의 안경테보다 더 흐릿했다. 엄마는 아마 홍시밖에 줄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게 뭐라고 그렇게 맛있게 먹나, 싶어서 애가 쓰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차마 엄마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막내딸일 것이다. 대신에 나는 눈 앞의 홍시를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마치 엄마가 얼려놨다 주지 않으면 홍시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내가 다른 것 아닌 홍시를 좋아해서, 우리 집 마당 앞 감나무에서 톡 하고 딸 수 있는 홍시를 좋아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이제 집에 가면 더 이상 홍시는 없지만, 홍시를 먹는 딸을 앞에 두지 않고도 흐릿한 눈을 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 살갑게 말을 붙이거나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잊은 지 너무 오래된 딸은 이번엔 어떻게 행동해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동안엔 홍시를 맛있게 먹으면 됐었는데,

이번엔 홍시가 없는데,

얼려둔 홍시가 없는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