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음절의 사이

by 주연

엄마의 항암치료가 시작된 뒤 내 기분은 필연적으로 엄마의 상태에 따라 좌우되었다. 가까이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항상 전제되었고, 체한 것처럼 마음이 늘 불편했다. 전제된 죄책감은 일상에 큰 방해가 되진 않았으나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버퍼링에 걸린 듯 멈칫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되나, 하는 전형적이지만 치명적인 자책 때문이었다.


남자친구를 만나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가만 누워 휴식을 취하다가도, 내가 지금 이렇게 편해도 되나. 맛있는 걸 먹다가도, 이게 지금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그렇게 지내다 엄마가 밥을 많이 먹었다는 소소한 면죄부라도 들으면 맛있게 식사할 수 있었다. 항암약의 부작용이라는 것이 아주 다양해서, 엄마는 하루는 속이 메스껍다했고 하루는 근육통에 힘들어했고 또 다른 며칠은 하루 종일 설사만 해대기도 했다. 제발 잘 버텨주길, 그동안에는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엄마에게 천운이 내려서 부작용이 없는 듯 지나가 주길 기도했다. 부작용이 점차 누그러들기 시작한 항암 2주 차가 되어서야 엄마도, 내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비록 이런 항암을 기약 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좌절스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랬다. 엄마가 괜찮다는 얘기를 들어야, 나의 마음도 괜찮았다.




대학시절, 주로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는 쪽이었던 내가 나답지 않게 엄마를 찾았던 일이 있었다. 그만큼 긴급한 상황이었다. 아르바이트 월급날보다 기숙사비를 내야 하는 날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모자란 기숙사비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 날짜들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스스로가 미워질 지경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나는 정말 긴 시간을 고민한 끝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 기숙사비가 모자라다.”


엄마도 당황스러웠으리라. 딸에게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호소였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침착하게 얘기했지만 초조한 마음이 완전히 숨겨질 리 없었다. 엄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을 했다.


“없는데, 그만큼이...”


우짜겠노, 하는 엄마의 중얼거림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맨날 우짜겠노, 우짜겠노. 진짜 어떻게 해야 될까 싶어서 마음이 타들어가는 건 난데, 한 번도 어떻게 해준 적은 없으면서. 항상 말만.


신경 쓰지 마라,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엄마가 신경 쓰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걱정하고, 나만큼 초조하길 바랐다. 왜 나는 이런 상황에 기댈 곳이 하나도 없나,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하는 아주 나쁜 생각까지. 나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손을 벌렸다. 나의 치부가 드러난다고 생각했고 처음 해보는 아쉬운 말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나만큼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며 돈을 모으고 있던 친구에게 사정을 말하고, 모자란 기숙사비의 딱 절반만 빌려달라고 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바로 갚겠노라고. 나머지 절반은 또 다른 친구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고맙게도 뭐하러 이런 얘길 남한테 두 번이나 하냐며 모자란 금액만큼을 전부 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급한 불을 끌 수 있었고, 친구에게는 월급을 받자마자 이자까지 붙여 돈을 갚았다.


[괜찮나?]


엄마의 메시지에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사정을 말해가며 돈을 빌려야 하는 심정이 어떤지 직접적으로 말하긴 싫지만 엄마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 울고 싶은지,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지. 엄마가 부모로서의 무능을 스스로 깨닫고 나에게 미안해하길 바랐던 것 같다. 고작 스물한 살. 나는 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굳게 믿었지만,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때의 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괜찮냐’는 엄마의 메시지에 정말 단순한 궁금증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어야 했다. 해주지 못하는 마음은 받지 못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미어질 수도 있음을, ‘괜찮다’는 대답을 듣지 못한 엄마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파할 수도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지금의 내가 엄마의 괜찮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때의 엄마에게 나의 괜찮음이 간절했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알 리가 없었던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죄를 지었고, 깨달음은 항상 너무 늦게 찾아온다.


괜찮다는 음절의 사이에는 나의 안부보다 너의 안위에 대한 바람이 들어 있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만큼은 괜찮을 예정이다. 엄마가 언제, 어느 순간에든 내게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그다지 큰 무게를 담지 않고라도 좋으니, 지나가는 말로라도 ‘괜찮냐’고.

이제 대답할 수 있는데.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정말로 나는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