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장아찌 학사 학위를 땄다

by 주연

“엄마, 도마 어디있노?”

“엄마, 진짜 미안한데 키친타월은 어디 있는데?”

“엄마!”


이쯤 되니 의기양양하게 부엌에 들어선 기세가 민망해졌다. 엄마는 보지 않는 척 계속해서 흘긋거렸고, 내가 “엄마”하고 부르면 높낮이를 숨긴 말투로 차분히 대답했다. 자꾸만 질문을 쏟아내는 내게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듯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말투였다. 그러다 결국 내가 먼저 참지 못하고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또다시 “엄마”하고 부르자 엄마도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쪼껜만 해라.”


나도 일부러 높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면 한통만 만들게.




항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작용 중의 하나가 바로 구토와 오심이라고 한다. 악독한 그 과정을 이겨내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도저히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나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는 다행스럽게도 구토는 하지 않았지만 며칠을 메스꺼움에 힘들어했다. 항암약은 나쁜 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죽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면역력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잘 먹어야 했다. 엄마는 메스껍다고 하면서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끼니를 챙겨 먹었다. 언니는 그런 엄마의 곁에서 삼시 세 끼를 함께 했다.

타지에 살고 있는 나는 “엄마가 밥을 못 먹는다”, “오늘은 추어탕에 말아서 두 그릇을 먹었다” 등의 소식을 메시지를 통해 듣는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기분은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탔다. 틈만 나면 버릇이라도 된 듯 검색창에 유방암을 쳐 넣었고 이미 눈에 익은 검색 결과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 엄마와 비슷한 상황의 어느 환자가 좋은 치료 결과를 보였다는 사례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들뜨는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모든 치료과정이 잘 진행되고 우리 엄마도 이 사람처럼 잘 견뎌낼 것이라는 생각에 나답지 않게 콧노래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어느 암환자의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항암 과정에서 입안 가득 기름을 물고 있는 듯한 메스꺼움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을 때, 유일하게 몸이 찾기라도 하는 듯 먹을 수 있었던 반찬이 한 가지 있었다고 했다. 바로 ‘마늘장아찌’였다. 나는 그 영상을 보자마자 오랫동안 찾아 헤맨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급히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내가 마늘장아찌 담가줄게.]


엄마는 웬 마늘장아찌인가 싶었겠지만 나는 그 날부터 검색창에 유방암을 처넣는 대신 마늘장아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갖가지 레시피를 훑어보고 요리에 어설픈 내가 최대한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마늘은 어떤 걸 사야 하는지, 장아찌를 담그는 용기는 따로 있는지 등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그렇게 마늘장아찌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은 요즘 도통 가질 수 없었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얼른 장아찌를 만들어서 엄마의 메스꺼운 속을 달래주고 싶었다. 이렇게 다른 반찬도 아니고, ‘장아찌’를 만들 정도로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엄마를 한시도 잊고 있지 않음을 마늘장아찌로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늘장아찌 레시피를 싣고 있는 블로그는 아마 내 걸음으로 문지방이 다 닳았을 것이다.



고향에 가기까지 약 2주간의 시간 끝에 마늘장아찌 석사는 못되어도 학사학위 정도는 딸 만한 정보량을 습득했다. 드디어 고향에 가는 날, 들뜬 마음에 조금이라도 서두르고 싶어 중간 지역에서 환승까지 해가며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주방에 들어섰건만, 나는 온통 엄마를 찾으며 도마 하나, 키친타월 하나 혼자 찾지 못했던 것이다. 미리 집으로 주문해두었던 2kg가량의 마늘종이 무색하게, 내가 낸 결과물은 마늘장아찌와 함께 엄마의 시선이 가득 담긴 1.6L짜리 락앤락 발효 용기 한 통이었다.


얼렁뚱땅 마늘장아찌 담그기를 마무리짓고 종일 TV를 보고 있는 엄마 뒤쪽 소파에 슬그머니 앉았다. 아직도 나는 엄마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어색했다. TV에서는 서울 토박이 연예인들이 부산 구경을 다니느라 왁자지껄했다. 나는 그 여행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그걸 보고 엄마가 웃는다는 사실이 참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엄마의 뒷모습에서 웃음을 찾아 헤매다가 문득 민둥 해진 머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부러 현관까지 마중 나와 민머리로 웃어 보일 때는 엄마, 귀엽네! 하며 까르르 웃고 넘겼던 참이었다.


환자가 머리를 밀 때는 가족들이 엉엉 운다고 하던데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민머리가 된 것은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물론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엄마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일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다른 환자들보다 조금 일찍 머리가 빠졌네, 우리 엄마가 진짜 암환자구나, 항암이 끝나면 언젠간 다시 나겠지, 정도. 그러나 엄마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장면이 갖는 무게. 내가 왜 이 장면을 두 눈에 담고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지. 아기가 된 듯 머리카락이 없는 엄마가 주방에서 애쓰는 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나는 주방을 온통 헤집으며 집기의 위치를 묻고, 엄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웃어버리는 이 모든 장면들이 나중의 나를 눈물겹게 하리라는 것 까지도.


나는 마늘장아찌가 부디 맛있게 익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맛있게 익어라, 우리 엄마 다 낫게 맛있게 익어라.

기껏 학사학위까지 땄으니, 내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마늘장아찌를 슬퍼하는 일 없이 먹을 수 있게.

맛있게 익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