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나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고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러기 위해선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연함이 하얀 그릇에 예쁘게 담긴 닭백숙을 배경으로 떠올랐다. 닭백숙의 뽀얀 살결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내 눈앞을 어찌나 막막하게 만들었던지.
한참이나 비가 오다 그쳐 더워진 주말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늘 있는 주말근무를 마치고, 후배의 초대를 받아 함께 다녔던 대학교 앞의 어느 원룸을 찾아갔다. 처음 하는 방문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바뀐 풍경이 찾아가는 길을 낯설게 만들었다. 예전엔 가로등 불빛 하나 없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던 골목이었는데, 지금은 자동차까지 2차선으로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인 도로가 되었다. 오는 길에 과자점에서 산 디저트를 손에 달랑 들고 기억을 더듬어 원룸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마음이 제법 반가웠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이제 갓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든 후배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받은 것은 어제의 일이었다.
어쩐지 죄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 병마와 싸우고 있고, 그 축을 중심으로 나머지 가족들의 일상이 돌아가는. 나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그 중력에서 살짝 벗어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사실은 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일상에서 몇 퍼센트의 웃음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달아 쉬는 휴일에는 반드시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시간을 함께 했으며, 그렇지 않은 징검다리 휴일에는 오로지 집 안에 틀어박혀 생각의 되새김질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얼굴 한번 보자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사양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진 않아도 외로움에 예민한 성격이다 보니, 혼자 하는 사유가 한계에 달해 드디어 대화와 만남이 그리워졌을 때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안 먹을래요?]
한결같은, 발랄한 이모티콘에 시선이 머물러 웃음이 먼저 나왔다. 선뜻 그러자고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으나, 저녁 한 끼쯤 뭐 어때. 그러자고 답장을 보냈다. 내 대학 생활에서 유일했던 대외활동인 모 대기업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서 만난 후배였다. 그때의 나는 복수전공 때문에 최고학년인 4학년을 넘어 심지어 5학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후배는 갓 대학교에 입학한 스무 살의 새내기였다. 그때 후배의 눈에 내가 얼마나 왕언니(?) 같아 보였는지는 나중에 3주간의 대외활동이 다 끝난 다음에야 알았다. 은연중에 나도 팀의 최고령 여자 멤버로서 의젓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나이답지 않게 처음 해보는 대외 활동을 잘 해내야겠다는 부담감이 앞서서 그랬던 건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무뚝뚝한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살갑게 따라주고,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했던 멤버들. 그들 중에서도 이 후배는 사랑을 가득 받고 자란 기운이 지나는 자리마다 묻어나,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마음의 거리가 생겼던 아이였다. 내가 지나온 대학 생활을 이 후배는 겪을 일이 절대 없을 것이고, 겪어서도 안될 것만 같아서 나이만 많은 선배인 내가 그다지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의 암 진단 소식을 전했을 때, 가장 먼저 내게 달려온 것이 이 후배라는 사실은 나 스스로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사는 원룸 바로 근처의 커피숍에서 만난 후배의 손에는 블루베리 몇 팩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언니! 언니 얘기 듣고 바로 아빠한테 갖다 달라고 했어요.”
심지어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으신 블루베리였다.
“검색해보니까 암에 좋다고 하길래...”
후배는 오랜만에 만난, 한참이나 어른 같아 보였던 선배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을 어색함을 견뎌내며 한 글자 한 글자 예쁘게도 내뱉었다. 블루베리를 건네받은 나는 그때도 문득 마음이 막연해졌던 것 같다. 이 아이에게 나는 뭘 해 준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어렵게 대학 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 준 것만큼의 격려나 조언조차 해 준 적이 없는데. 그런 후배에게 방금 씻은 듯 물이 방울방울 맺힌 맑은 블루베리를 받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왕언니로서 의젓하지 않아도, 산전수전 겪은 대학 생활 선배로서 유의미한 조언을 건네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란 게 존재하는 거였구나. 가치 있는 역할을 해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이런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 거였나. 그렇게 블루베리를 품에 안고 후배와 얘기를 나누었다. 커피숍 문이 닫힐 때까지 한참 동안이나.
“언니,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돼요!”
후배는 빼꼼 고개를 내밀어 문만 열어주고는 다시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 후배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입으로는 응, 천천히 해, 여기 오는 길 진짜 많이 변했다, 와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이미 수저가 놓인 앉은뱅이 식탁 앞에 퍼질러 앉았다. 잠시 후 후배가 내 눈엔 제 몸집만 해 보이는 커다란 그릇을 들고 나왔다. 언니, 곧 말복이잖아요. 빨간 부추 무침을 고명으로 올리기까지 한 뽀얀 닭백숙이 그릇 위에 담겨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닭백숙을 할 생각을 다 했어?”
후배는 해맑게 웃었다. 뜨거울까 봐 준비했다며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야무지게 비닐장갑까지 덮어 끼우고는 잘 익은 살을 발라 연신 내 앞접시에 덜어주었다. 언니, 이거 다 먹고 가야 돼요. 도무지 여자 둘이서 다 먹을 순 없는 양처럼 보였지만,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접시에 놓이는 닭살을 집어먹었다. 4시간이나 고았다는 예술적인 국물 맛에 감탄하기도 하고, 연근조림은 또 어쩜 이렇게 맛있니, 밑반찬에도 칭찬을 하고, 그렇게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가서야 내 젓가락질은 멈추었다. 이미 치마 지퍼를 슬쩍 내리고도 배가 불러 허리를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다섯 살이나 어린 후배가 발라주는 살을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하기도 조금 웃기고, 낯설어서 실없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했다. 이 아이가 지금 내게 건네주는 위로와 마음은 보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내가 준 것이 없는데도 마음을 건네고 있으므로.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지면서도, 닭백숙을 배경으로 눈 앞이 흐려졌던 것이다. 내가 나에게 저지른 일을 고백하자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함에.
스무 살 성인이 되자 갑작스럽게 대학교라는 큰 사회에 던져지게 되었고, 심지어 가난이라는 나만 보이는 주홍글씨가 가슴팍에 새겨지기까지 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발버둥 쳤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남들보다 조금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는 잘 이겨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존재의 증명이 필요했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종종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것들은 내 존재의 가치였다. 난 비록 가난하고, 아르바이트로 스펙을 대신하고, 열심히 번 돈으로 여행을 가는 대신 이자를 갚아야 하고, 청춘이 누려 마땅하다는 어떤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치 있는 존재여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보내는 그 청춘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이라며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느끼는 힘듦보다 과장해서 힘듦을 이야기하고, 와중에 의젓해야만 하고, 힘들다는 말 대신 나는 잘 견디고 있다 말하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타인의 인정과 대단하다는 말을 주홍글씨 위에 훈장처럼 덧붙였다. 그렇게 버텼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닭백숙을 배경으로 녹아내린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됐던 거였는데. 때로는 힘들다 말하고, 나한테 밖에 안 보이는 주홍글씨를 털어놓기도 하고, 의젓하지 않게 여기저기 날 위한 돈을 써보기도 하고, 그랬더라도. 그랬더라도 나는 조건 없는 마음, 위로, 격려, 혹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배가 말해준 것만 같았다. 천천히 자라도 되는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20대가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더 행복할 수 있는” 20대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아직도 덜 자란 내가 남은 몇 뼘 정도는 천천히 자라도 된다면. 그렇다면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내가 될 수 있을까.
치열했던 청춘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 치열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까지 치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조금은 자연스럽게, 천천히 자라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겨내는 척하지 않고, 담담한 척도 하지 않으며. 그래도 건네받을 수 있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