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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Oct 18. 2020

OO아! 해줄 수 있지?

숨겨진 강박증을 찾았다

1. 사소한 세부사항이나 규칙, 시간계획 등에 집착하며 일의 큰 흐름을 읽으려 한다
2. 하고 있는 과제나 일 등이 자신의 완벽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마감기한을 넘기거나 완수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3. 여가시간이나 우정을 나눌 시간보다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4. 도덕, 윤리, 가치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고지식하며 융통성이 없다
5. 감성적인 가치가 없는데도 닳아빠지거나 오래된 무가치한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6. 타인의 업무 스타일이 자신과 다르면, 일을 맡기거나 같이 일하기를 꺼린다
7.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돈을 쓰는 것에 인색하다
8. 평소 행동이나 결정에 경직성과 완고함이 있다


위 질문 중에 자신이 해당되는 게 몇 개나 되는가? 한 개? 여덟 개? 나는 무려 4개나 된다. 4개 이상이면 소위 말하는 ‘강박성 성격장애’에 해당된다. 본디 ‘강박증이 있다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란 생각을 늘 해왔었다. 강박증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조금만 침범해도 노발대발하던 사람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강박증이라니! 아무리 재미로 해본 거라지만, 어느 정도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위 질문들로 본 나의 강박증은 이렇다. 


 1. 시간 계획에 집착한다 


‘Notion’이라는 앱을 통해 하루하루 무슨 일을 할지 계획하는 습관이 있다. 달성 정도를 기록해서 시기별로 비교해보기도 한다. 어떤 때에 열심히 살았고, 어떤 때에 여유롭게 살았는지를. 여기에서 소소한 재미도 느낀다. 문제는 계획했던 일이 ‘타인에 의해’ 충족되지 않을 때나, 수정되어야 할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짜증 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이곳저곳 놀러 다닐 때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기만 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마침 비교적 자유로워진 주말을 보내게 됐다. 이때다 싶어, 밀렸던 일들을 이리저리 처리하던 중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OO아. 내일 이것 좀 해줄 수 있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지면서, 도덕적 올바름과 계획들과의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했다. 무엇을 택하던 한쪽에게서 ‘경고’를 받게 되는 상황. 순간 짜증이 솟구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계획 틀어지는 거 진짜 싫어하는구나.. 나는 아직 감정에 휘둘리는구나..’ (결론적으로 후회가 덜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마음이 시큰해지는 경험이기도 했고..)


 2. 국소적인 완벽주의가 있다 (쓸데없는 고집러) 

 

무슨 일을 하던 ‘일단 해보자!’, ‘일단 끝내 놓자!’란 스탠스를 가진다. 나만의 스타일인 것 같은데, 문제는 직성이 풀릴 때까지 다른 사람의 말이 안 들린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PT자료를 손수 봐주신 상사가 ‘이 정도로도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했을 때, ‘감사합니다!’라고 해놓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수정했던 경험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PT자료여서 마음껏 수정할 수 있었던 환경이긴 했다.) 덕분에 ‘뭐든 최선을 다 하는 사람’ ‘프로적극러’ ‘가끔 최선이 과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 '너무 심한 고집은 부리지 않는 게 좋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3. 여가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한다 

 

퇴근 후나 주말이 되어도 ‘힐링’ 보다는 ‘성장’ 위주의 활동들을 한다. 예를 들면, ‘배움을 위한 책 읽기’나 ‘배움을 나누는 글 쓰기’, 사람을 만나더라도 ‘배움을 위한 만남’ 같은 것들. 때문에 종종 친구들이 너무 바쁜 것 아니냐며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배움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힐링을 위한 에세이 읽기’를 시작해놓고 어느새 필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도 많다. 

아직까지는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은 나이기에 ‘이 모습도 좋다’란 생각을 갖곤 있지만, 이러다가는 고독감만 늘지 않을까 걱정된다. 

 

 4. 타인의 업무 스타일이 잘 맞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를 꺼려한다 

 

말 그대로다. ‘업무 스타일’이 다르면, 같이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주춤한다. 그렇다고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이 부분은 원체 잘 인지하고 있었어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으로 극복하는 중이다. 어떤 때는 같이해야 편해지는 상황에서도 그냥 끌어안고 혼자 해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 놓고 힘듦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백지장도 나누면 낫다는 말은 진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5.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반추한다 (반추적 사고) 

 

하루하루 했던 행동들을 곱씹어보는 버릇이 있다. 좋게 말하면, 반추적 사고력과 성찰력이 강하다. 안 좋게 말하면,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배려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웬만하면 신경 써서 행동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의식하다 보니 타인의 비난에 쉽게 ‘우울해진다’는 부작용이 있다. 


성격 장애 패러독스 (Personality Disorder Paradox)

 

흔히 ‘성격장애’라고 하면 인식이 안 좋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쯤 갖고 있거나, 사소한 증상들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질병’이 아니다. 오히려 성찰과 실천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낼 수 있는 ‘기회’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도 ‘강박증’을 갖고 있었고, 이를 통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계획에 대한 강박증을 인지했고, 앞으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 반추적 사고력도 조금씩이나마 키우고 있다. 만약 어느 독자분이 나와 같은 강박증을 갖고 있다면, 본인만의 해결책을 알고 있다면 공유해주길 바란다. 다른 성격장애에 대해 재밌게 테스트해보고 싶은 분들은 <지대넓얕 101회 - [정신] 성격장애 편>을 참고하면 좋다. 


 * 본 글은 지대넓얕을 듣고, 일련의 경험들과 조합하여 쓴 글입니다. 여기서는 ‘질병’으로서의 진지한 진단보다는 약간의 ‘재미’를 곁들인 진단이므로, 정확한 진단을 원한다면 전문적인 기관에서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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