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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Oct 21. 2020

지식이 무용한다? 무슨 소리예요?

진실 혹은 거짓, 서프라이즈의 세상

“생각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실의 대부분은 거짓이다. 오늘날 데이터와 정보, 지식이 우리 주변에서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의 많은 부분이 점점 더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 -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중에서


지금은 정보의 홍수가 이곳저곳에서 난무하는 시대다. 의학지식이나 전문 기술, 과학 등 수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떠돌아다닌다. 심지어 어떤 정보든 손안에 작은 상자 하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알아낼 수 있다. 그만큼 지식이 삶에 가까워진 것이다. 


지식은 삶을 꾸려감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다. 인간이 불을 막 발견할 즈음에는 사냥이나 채집에 관련된 지식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감의 생활패턴, 자주 드나드는 곳, 습성 등을 유심히 봐야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농경’의 힘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지식이 요구됐다. 예를 들면, ‘어떻게 심으면 더 많이 자랄까?’, ‘어느 시기에 심는 게 좋을까?’ 등이다. 여기에는 기후나 땅의 상태, 강의 유무 등도 포함된다. 산업시대 때는 어땠을까? 당연하게도 어떻게 하면 공장을 더 생산적으로 가동할지 등 지식이란 걸 지닌 사람이 부를 쟁취했다. 


문제는 이렇게나 중요한 지식들이 넘쳐나는 지금, 진짜가 아닌 지식들이 판을 친다는 데 있다. 아무리 의학지식과 같은 생존 지식, 흥미로운 기술이나 과학지식들이 많다고 해도 거짓이라면 아무 쓸모가 없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들을 ‘무용지식’이라고 부른다.

 

무용지식의 역사

 

무용지식은 최근에 생긴 게 아니다. 역사 속에서도 무용지식이 몸을 드러낸 정황이 포착됐다. 천재라고 부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일례다. 그는 13,000장이나 되는 노트에 지식들을 기록했다. 실제로 그 시기에 ‘비행기’의 모체가 되는 개념도를 그리기도 했다. 이런 그가 가짜 지식을 주장했다고 한다면 믿어지는가? 흥미롭게도 그가 알고 있던 지식 모두가 진짜는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도, 인간이 비버의 고환을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비버들이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비버들은 포획되면 자신의 고환을 물어뜯어 적에게 물어뜯은 고환을 남겨놓는다고 단언했다.” - <부의 미래> 

* 여기서의 '비버'는 beaver로 영물이다. 비버의 고환은 과거 독을 제거하거나 생리불순, 순산을 돕는 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아래 그림은 13세기 프랑스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책에 삽입된 그림이다.(쫓기는 게 비버)


무용지식의 사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과학의 역사에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를 아는가? 그는 최초로 천동설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는 15세기 폴란드의 저명한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하기 전까지 진리로써 여겨져 왔다. 무려 1500여 년이 지나도록 진짜 지식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무용지식은 사람들에게 진리로써 여겨질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쉽게 감춘다. 넘치는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운 우리는 이들을 구분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용지식이 정말 무서운 점은 잘못된 정보로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아니었다면 인간이 우주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을까? 소수점 아래의 오차로도 발사가 실패되는 우주선을 생각하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만약 코로나로 고통받는 우리가 대처 방안으로 세운 것이 무용지식이었다면? 그래서 예방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 세계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적인 모든 것들이 마비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용지식을 피하려면 어떻게?


그럼 대체 우리는 무용지식을 걸러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찐 지식들만 쏙쏙 골라내는 방법은 있을까? 앨빈 토플러가 제시한 진실 여부를 가늠하는 방법 중에서 3가지를 꼽아봤다. 

 

 1. 합의 


우리는 일반적으로 ‘합의’를 바탕으로 공통된 명제를 형성한다. 즉, 진리 하나를 발견했을 때 독단적으로 “이게 진리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생각을 통일해서 진실성을 가려낸다.(‘집단지성’의 힘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 상황도 고려해봐야 한다. 모두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대라면? 우린 무용지식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올바른 소수’가 있다고 해도 ‘집단 편향’의 영향으로 모두가 무용지식을 바라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2. 권위 

 

권위도 하나의 진실 여부 파악 방법이 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전문가가 정한 지식을 생각하면 좋다. 그런데 최근에는 권위의 주체가 너무 다양해지고 있어서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그나마 워런 버핏의 경제학 정도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단순히 ‘종교적 말씀’은? 이슬람교의 성직자, 천주교의 교황, 개신교의 목회자, 불교의 스님 등. 그들이 설하는 알라, 하나님, 부처의 말들은 모두 진리일까? 그들이 모두 진리라면 세상에 진리를 정하는 신은 대체 몇 명인가? 

심지어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도 ‘권위’를 가진다. 대중매체도 이러한 힘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는 마치 하나의 진리가 되어 모두에게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진리라고 믿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스스로 권위에 대한 지식을 취할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3. 과학 

 

마지막 기준은 과학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천동설-지동설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과학은 세상의 원리를 지식 체계로서 정리한 것이다. 가설로 시작한 것들도 하나하나 증명해가며 얻은 검증된 지식이 된다. 따라서 무용지식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할 때 객관적인 기준으로써 훌륭하다. (근대 과학에서 실증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객관적인 입증이 중요시된 점을 떠올려보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

 

정리하자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지식’ 이란 건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고, ‘행복’, ‘즐거움’ 등과 같은 가치들을 지키거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갖 ‘무용 지식’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심지어 최근에는 기술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만큼 진짜 지식이었던 것들도 무용지식이 돼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무용지식들을 걸러낼 줄 알아야 한다. 


무용지식들을 걸러내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 ‘대다수가 합의한 지식’, ‘권위자가 정의한 지식’ 그리고 ‘과학으로 입증된 지식’이 그들이다. 이들을 조금은 조심스럽게 고려하며 지식을 대한다면, 좀 더 올바른 알맹이 지식들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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