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by 금교준

살다 보면 한 사람과의 첫 만남이 한 번이 아님을 느낀다. 아니, 한 사람을 진정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다. 한 번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또 한 번은 그도 나와 동갑일 때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다.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셨다.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잡으면 좋겠다 라는 의견이 울대까지 차오르시는 분. 그러나 결코 내뱉지 않으려 붙드시는 분이다. 아들의 삶은 아들이 사는 것이라면서.


아버지 또래의 직장 동료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일을 그만두고 이상을 좇을 것인지, 어느 정도의 이상은 포기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풀었다. 우문현답이라 하던가. 종종 사람은 질문과 다른 답변에서 지혜를 배운다. 그는 아버지가 나를 나으신 때를 물었고, 나는 생각했다. 딱 내 나이 때 내가 나왔구나.


나였으면, 지금 아이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상보다는 현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눈 앞의 핏덩이를 먼저 살리는 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구색을 찾아다니지 않았을까. 싸늘하고 초라한 단칸방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늑한 셋방을 원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생각을 굳힌다. 그렇게 주관이 생기는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가.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의 피를 닮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택한 결정을 신념으로 굳힌 게 아닐까.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는 삶을 살게 됐으니 아들에게도 그 길을 걸으라고 제안하는 것이 아닐까.


다락을 만들겠다던 아버지는 머리가 희끗하다. 입술에는 은은한 미소가 고즈넉하니 앉아있다. 눈가는 살짝 접어둔 책의 말미처럼 자상하다. 오늘은 그의 주름을 한 줄 더 이해하게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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